|
[스포츠서울 남혜연기자]호기심 많은 소녀가 있었다. “엄마, 하늘의 색은 왜 저렇게 예뻐?”라며 색에 취해있던 아이는 길을 단숨에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의 옷, 주택가 담벼락에 핀 꽃부터 사람들의 생김새까지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행복했단다. 남달랐던 그 아이는 먼 훗날 ‘토종 핸드백 브랜드의 신화’라고 불리는 디자이너가 됐다.
석정혜 디자이너의 일거수일투족에 패션업계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닉네임에 있다. 해외 명품이 아닌 토종 브랜드 ‘쿠론’(COURONNE)을 여성들의 잇 백으로 히트시켰다. 2009년 론칭한 쿠론의 가능성을 알아본 코오롱FnC이 이듬해 브랜드를 인수했고, 석 디자이너는 코오롱에서 이사직을 맡았다. 이후 6년 만인 2016년 3월 신세계인터내셔날 잡화부문 상무직으로 옮겨 활동하다, 올 초 자신의 이름을 딴 ‘석인터내셔날’을 설립해 ‘분크’(vunque)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했다.
‘대체 왜?’라는 질문에 석정혜 디자이너는 “내 것이 하고 싶었다.(웃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즐거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며 의외의 대답을 했다. 디자이너에서 기업을 이끄는 대표 그리고 인플루언서(소셜 네트워크에서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영향력 있는 개인)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 석정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물었다.
◇과거 : 토종 가방 브랜드 신화, ‘디자이너’ 석정혜가 궁금하십니까?‘석정혜=컬러’를 빼놓을 수 없다. 남다른 안목으로 만들어 낸 색감과 몸에 착 붙는 디자인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시작도 남달랐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패션기업 한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1995년부터 OEM 가방 사업을 했다. 작은 사무실에서 혼자 일을 하다 싸이월드에 가방 사진을 하나, 둘 올려 팔았다. 또 길가던 몇몇 사람들은 그의 독특한 패션을 보고 “혹시 그 가방 어디서 팔아요?”라고 묻는 일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났다. 그렇게 개인으로 주문을 받다 ‘제대로 시작해 보자’고 만든 게 쿠론의 시작이었다.
또한 20~40만원 대의 합리적인 가격은 덤으로 디자이너 석정혜가 만드는 백은 ‘합리적 럭셔리 브랜드’라는 강한 인식을 심어줬다. 이러한 점은 정확히 수치로 드러났다. 코오롱FnC가 인수한 직후인 2011년 연매출 120억원이었던 쿠론은 그가 떠나기 직전 700억원까지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물론 백화점 중심의 유통망과 해외진출이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남다른 디자인과 컬러의 백이 아니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당시 알록달록한 색상의 스테파니백을 히트시켰는데, 피에르가르뎅이 디자인을 베껴 소송을 당할 정도로 인기 있었다.
“사실 ‘쿠론’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과거잖아요. 애써 그런것은 아닌데, 저는 디자인 뿐 아니라 다른 산업까지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이 동네에 길이 새로 났는데 ‘넓이가 얼마일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간판도 보고, 건물 창문의 위치도 보고요.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요. 일부러 색채 공부를 하지 않아요. 하늘을 보고, 사람들의 옷 컬러를 보면서 감을 익히죠. 이 모든 게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매출을 많이 올려야지’가 아닌, ‘사람들은 어떤 것을 좋아할까?’가 기본이었죠.”
과거의 경험은 지금의 석정혜를 있게 한 자양분이다. 대기업에 들어가 ‘조직사회’를 경험하게 됐다. 언론홍보부터 매출까지 전반적인 부분을 알게된 계기였다. 뒤를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계기이자, 또 다른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큰 조직에서 나왔을때요? ‘브랜드를 론칭해 이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가방을 만드는 게)재미있고, 해야되니까 했어요. 난 항상 그렇게 똑같았던 것 같아요. 코오롱에 브랜드가 인수 됐을 때 1년 정도는 기고만장했고,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았어요. 하하. 거기서 진짜 일을 배웠죠. 대기업에 있었을 때도 내 것처럼 일을 했고요. 가방을 만드는 것을 넘어 브랜딩을 하고 숫자를 배우고 사업에 대해 알았죠. 가방 하나만을 바라본 게 아니라, 큰 틀에서 전체적인 것을 보게 된 결정적 계기였어요. 성장의 시기였어요.”
|
|
◇현재 : 분크(vunque)의 디자이너 겸 대표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분크’라는 새로운 브랜드는 디자이너겸 사업가 석정혜 인생의 제2막이다. 분크는 이탈리아어로 ‘어디에서도’라는 뜻을 가진 ‘Ovunque’라는 단어에서 착안했다. 여기에 디자이너 석정혜의 트레이드 마크인 ‘부담없는 가격대와 멋스러움으로 언제 어디서나 고객과 함께 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남달랐다. 분크 백의 모든 잠금장치는 면도칼 모양이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진실하다는 의미의 ‘오캄의 면도날’에서 따왔다. 이번에도 역시 각 디자인마다 이름이 있다. 특히 실용적인 동시에 스타일리시한 감성의 ‘토크(toque)백’은 SNS상에서 화제다. 가방을 구입한 사람들의 리뷰도 많지만, 그의 SNS에는 이 가방을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대한 자연스런 사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여기에 SNS라이브 방송을 통해 직접 설명을 하고 모델 역할을 하며 직접 소통하는 것 역시 강점이다.
“처음부터 그랬어요.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발전했죠. 사람들의 생각을 가장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동시에 소통할 수 있고요. 그래서 온라인으로만 유통을 한정했죠. 분크를 만들때 생각한 것은 한가지였어요. 사람들은 뭐가 예쁜게 있어서 쳐다보잖아요. 이것은 무엇인가 달라서 보는거죠. 컬러든 디테일이든, 어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만들었죠. 아마 사람들이 ‘분크’를 좋아한 이유는 기존의 디자인과 다르다는 점이죠. 무엇보다 카피가 아니라서 그렇지 않았을까요?”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2월 론칭한 ‘분크’의 백은 현재 월평균 3~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온라인으로 시작한 생소한 브랜드가 빠른 성장세를 기록한 것도 새롭다. 특히 토크백의 경우 누적 판매수량이 6000개를 넘었다. 매달 새로운 디자인이 공개되는 까닭에 소비자들도 기다림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석인터내셔날의 대표이자 디자이너 외 또 다른 직함도 있다. 패션브랜드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활동하며, 진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 나선 것. 패션그룹형지가 운영하는 잡화 브랜드 ‘장 샤를드 까스텔바작’ 외 해외에 약 100여개 유통업에 입점해 있는 모 브랜드의 CD로 활동 중이다.
“해외에는 개인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다른 브랜드 CD로 활약하는 사례도 많아요. 직원들도 흥미로워 하고요. 더 예쁘고, 눈길이 가는 가방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
◇미래 : 꿈을 위해 달리는 사람, 석정혜가 하고 싶은 말
매서운 눈매에 고상한 말투. 솔직히 말해 다가서기 쉬운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외형의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면 알 수 있다. 누구보다 따스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러한 마음을 모두 가방에 담았다. 어릴적부터 엄마를 따라 옷을 사는 것을 좋아하고, 예쁜 색만 보면 바로 집어들었던 석정혜는 어른이 되서도 늘 한결 같았다.
“‘가방 디자이너’라는 미사여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내가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예쁜 가방을 좋아해서 하는 게 팩트죠. 그리고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가능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어요. 간혹 ‘어떻게 하면 디자이너가 돼요?’ 라는 질문들도 많이 받죠. 그럴 때마다 저는 전문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어느 순간 자신의 길을 찾게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요. 살짝 승부욕도 있어요.(웃음) 좋아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꾸준한 면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주위에서 축하도 많이 해줘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열광하는 가방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말은 쉽게 했지만, 이 모든 것을 다 표현하기보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았다. 이제 브랜드를 론칭한지 6개월 밖에 안되기도 했고, 함께하는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컸다. 사실 전 직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이 없었다면 ‘분크’의 탄생은 어떻게 될지 모를 수도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 사직서를 낸 순간 두 명의 직원이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박세윤 본부장과 강영준 디자이너 실장이다. 두 사람 모두 기혼으로 디자이너 그리고 사람 석정혜 하나만을 보고 왔다는 게 두고두고 고맙다.
“우리는 친구처럼 많은 것을 고민했고, 즐거운 것을 나눈것 같아요. 대기업에서만 일했던 사람들인데… 내가 잘나서 쫒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진짜 어려운 결정을 한거죠. 그래서 더 열심히, 즐겁게 일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분크에는 미래와 희망이 있죠. 그런 의미에서 구호 한번 외쳐볼까요? 분크!분크!분크!”
whice1@sportsseoul.com
기사추천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