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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두경민(22·183㎝)은 올 시즌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대학 동기 김민구(22·190㎝), 김종규(22·207㎝)와 함께 ‘빅3’로 불린다. 이들의 실력은 당장 프로농구에도 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 하위팀들이 이들 빅3를 잡기 위해 일부러 져준다는 논란에 휩싸였을 정도다. 사실 두경민은 김민구, 김종규 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지는 못했다. 오히려 늦은 나이(중3)에 농구를 시작해 고교 시절까지는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엘리트코스를 밟지 않은 두경민은 어떻게 대학 최고 레벨의 선수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두경민의 열정, 부모님도 막지 못했다
두경민의 부친은 대학 시절까지 농구선수 생활을 했다. 그래서 농구 선수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지 잘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농구공을 갖고 노는 아들, 두경민에게 심한 꾸중을 하기도 했다. 두경민은 집안의 반대에도 농구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때 농구를 하고 싶어 가출을 한 적도 있었다. 할머니 집에서 생활하며 집에 들어가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시위였다. 두경민의 아버지는 그의 농구를 막기 위해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를 갔다. 농구부 없는 학교로 전학시키기 위해서였다. 두경민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손자의 열정을 지켜본 할머니가 직접 아버지를 설득했다. 두경민과 아버지는 세 달동안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화해. 두경민을 키웠다
우여곡절 끝에 농구를 시작한 두경민은 큰 벽에 부딪혔다. 늦은 나이에 농구를 시작한 탓에 다른 선수들과 기량 차이가 많이 났다. 그는 “중학교(배재중) 전력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도, 팀 동료선수들과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 부상 선수가 많다보니 실전 경기에 투입이 종종 됐었는데, 다른 팀들과의 경기에서 항상 졌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삼일중 김민구와 연서중 박재현(고려대)의 플레이를 보고 많은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포기는 하지 않았다. 두경민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했다”고 말했다. 두경민이 끈기 있게 운동을 이어가자 아버지도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날 아버지가 부르셨다. 아버지는 내가 금방 포기할 줄 아셨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고, 아버지가 최고의 지원자가 되어주시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날 부터 아버지와의 특훈이 시작됐다. 광신중 체육교사인 두경민의 아버지는 출근 전 새벽훈련과 퇴근 후 야간훈련을 도왔다. 두경민은 “그 때 쉴새 없이 훈련을 했던 것이 습관이 됐고 체력을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빅3로 성장한 두경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두경민의 기량은 경희대 진학 후 급속도로 발전했다. 고교시절 훈련량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경희대 최부영 감독은 “키는 크지 않지만 드리블 능력으론 우리나라 최고 수준이다. 간간히 실수를 하지만 많은 경험을 쌓다보면 보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노력형 선수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언제나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최근 많은 어린 선수들은 예전처럼 성실하게 훈련을 하지 않는 편인데, 두경민은 다르다”고 덧붙였다.
두경민은 대학농구리그에서 경희대를 이끌고 있다. 7일 수원대체육관에서 열린 한양대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0득점으로 양 팀 통틀어 최다득점을 기록했고, 8일 2차전에서도 22점을 넣으며 양 팀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경희대는 이날 승리로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했다. 두경민은 비록 시작이 늦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농구에 대한 열정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가드로 발전하고 있다.
화성 | 김경윤기자 bicycl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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