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기구하다. 어미는 산후의 고통을 못 이기고 하늘로 갔다. 아비도 일찍이 떠났다. 자신을 보호해 줄 조모도 없다. 짐승 같은 삼촌들로부터 왕위를 뺏겼다. 자신을 믿고 따라주던 신하들은 모두 비참한 죽임을 당했다. 살아있는 것이 지옥인 셈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유배지 영월로 끌려가는 이홍위(박지훈 분)의 눈은 텅 비어있었다. 아무리 의지가 있다 한들 무엇도 이룰 수 없는 처지가 처절한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까 싶어 정성스럽게 차린 밥을 물리는 것이 그의 의지라면 유일한 의지였다. “단 한 번도 의지대로 살아본 적 없는 자의 고통을 아느냐”는 이홍위의 대사는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영화는 시대의 거울이라 했다. ‘왕과 사는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건, 2026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무의식을 정확히 찔렀다는 걸 방증한다. 영화 관람에 그치지 않고 청령포까지 직접 찾는 관객들의 발길 역시 같은 맥락이다. 대다수 관객이 이홍위의 텅 빈 눈에 자신을 이입한 것은 아닐까.

이홍위가 수양대군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권력 시스템에 짓밟히고 유배지로 내몰린 것처럼, 지금의 대중 역시 고도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앞에서 톱니바퀴처럼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극도의 효율성만 강조하는 시대에 온전한 자아를 실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욕망을 분출할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의지를 거세당한 채 끌려가는 이홍위의 유약한 뒷모습은 각자도생의 현실을 버티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추는 듯하다.

다행히 그곳에는 인간의 존엄이 있었다. 멸문지화를 당할 공포 속에서도 ‘측은지심’만으로 순수하게 이홍위를 챙기는 영월의 사람들이 그렇다. 당장 내 목이 내쳐질지언정 옳은 일에 몸을 담겠다는 영월 백성들의 풋풋한 웃음은 피바람이 몰아친 서늘한 시대에 온기가 된다.

비록 쉽지 않은 삶을 버티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줄 영월의 백성들이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 영화를 보고 또 보게 만드는 동력이다. 무기력하지만 자존심은 지켰던 어린 왕, 끝내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산 자들의 죄책감, 그럼에도 왕을 마지막까지 품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뒤엉켜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서사뿐만이 아니다. 스크린 너머 배우와 제작진의 태도 역시 경건하다. 누구 하나 자신을 돋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사적 욕망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이 비극적인 역사를 완벽히 펼치겠다는 묵직한 집중력만 느껴진다. 덕분에 감정이 과잉으로 치달을 수 있는 순간에도 적절히 멈춰 서며, 관객 스스로 감정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감동은 더욱 짙어진다.

장항준 감독은 이홍위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산 자들의 슬픔’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어린 왕을 향한 온전한 애도를 표하기 위해 애초부터 정해둔 연출의 결이었다. 기교와 욕심을 비워낸 장 감독 특유의 온화한 시선은 매 장면 뭉클하게 스며든다. 그 온기가 홀로 싸워야 하는 차디찬 현실 속에서 얼어붙어 있던 대중의 마음을 단숨에 녹였나 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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