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서울 보인고등학교는 최근 ‘문무겸비(文武兼備)’ 신흥 명문고로 주목받는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2021년만 해도 9명이었는데 21명(2022) 23명(2023) 33명(2024)으로 늘더니 지난해엔 38명을 달성했다.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고려대와 연세대 등 주요 상위권대 합격자 수는 총 100명이 넘는다.

축구부 졸업생 역시 2년 연속으로 전원 국내·외 무대로 진출했다. 배승균(도르트레흐트 임대)이 네덜란드 명문 페예노르트에 입단했고, 노형준(V-바렌 나가사키) 전서호(이와키FC) 한준영(FC오사카)은 일본 무대로 향했다. 고정민(인천) 변정우(대구)는 K리그에 진출했다. 김서준과 박시운 박상후 전민후는 한양대학교에 진학해 학업을 병행하며 미래를 그린다.

상업고로 출발한 보인고는 세계 굴지의 ‘모피 기업’ 인성하이텍의 수장이자 한국중등축구연맹 초대 수장(2005~2012)을 지낸 김석한(71) 회장이 2004년부터 학교 운영을 맡으며 ‘환골탈태’했다. 보인고는 김 회장의 모교다. 단순히 모교 사랑을 넘어 사회 각 분야 인재 육성과 부의 환원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보인고를 품었다. 이사장직을 수행한 그는 보인고를 2007년 인문계로, 2011년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해 ‘공부도 잘 하고, 축구도 잘 하는’ 학교로 거듭나게 했다.

최근 서울 광장동에 있는 인성하이텍 사옥 회장실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김 회장은 보인고의 비상에 관한 질문에 “시대 흐름을 읽으며 도전적으로 비전을 품는 철학이 따랐다”고 했다. 그는 “어떠한 직책을 맡더라도 과감해야 한다. 회사에서 임원에게 무슨 일을 지시했는 데 ‘안 된다’고 답하면 ‘해봤느냐’라고 묻는다. 시도하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다. 1986년 회사 설립하며 ‘우신(又新)’이라는 사훈을 둔 것, 보인고를 맡으며 ‘날로 새롭게’라는 교훈을 둔 것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비를 줄이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참여형 야간 자율 학습, 전교생이 참여하는 반 대항 축구 리그, 집중력을 높이는 오침 시간 운영, 3학년과 신입생 간의 멘토링 프로그램 등 보인고만의 문화에 크게 만족해한다. 축구부도 마찬가지다. 성적에 집착하지 않고 연간 10여명의 신입생만 뽑아 집중적으로 케어한다. 김 회장은 과거 중등연맹 회장 시절 지도자 해외 연수, 국제 축구교류전 등 단기 성과에 매몰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 프로그램을 두는 데 힘쓴 적이 있다. 보인고 축구부도 단순히 프로, 대학팀에 진출하는 걸 넘어 갈수록 중요해지는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선수를 키우는 데 주력한다. 김 회장이 배승균을 품은 페예노르트와 업무협약(MOU)을 추진한 배경이다.

그는 “사실 바이에른 뮌헨(독일)과 협약 단계까지 간 적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선수가 너무 큰 구단과 연결됐을 때 견디는 게 쉽지 않다. 페예노르트와 손 잡은 건 우리 현실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며 “승균이를 봐라. 페예노르트와 네덜란드 프로 선수 최저 연봉 규정인 28만 유로(약 4억 8000만 원)에 3+2년 계약했다. 3년만 해도 페예노르트는 보장 연봉과 기타 비용을 통틀어 20억 가까이 쓴다. 승균이를 키울 수밖에 없고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페예노르트와 MOU를 통해 보인고 축구부는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에서 전지훈련하며 선진 축구를 경험, 새로운 발전 동력을 품었다. ‘제2 배승균’ 탄생의 디딤돌을 놓은 것이다.

일련의 모든 비용은 학교에서 지급한다. 학부모로부터 걷는 회비 역시 한 푼도 없다. 대다수 학교는 학부모의 회비로 지도자 급여를 챙긴다. 보인고는 지도자 신분을 모두 체육교사로 두고 정년(62세)을 보장한다. 지도자와 선수·학부모가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미래를 그리며 운동과 공부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의 리더십 중 가장 두드러진 건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새 시장을 개척하는 것 뿐 아니라 주요 이슈의 ‘해결사’로도 나서는 점이다. 이와키와 계약한 전서호는 애초 현지 메디컬 테스트에서 고관절 이상으로 낙마 위기에 몰렸다. 당시 네덜란드에 있던 김 회장은 국내 전문의와 긴급 통화를 거쳐 전서호가 국내에서 다시 고관절 진단을 받게 했다.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알고 보니 양국의 이상 유무 판독 기준 차이가 따랐다. 김 회장은 직접 일본 도쿄로 날아가 이와키 구단 사장을 만나 설명했다. “언제라도 고관절 문제가 발생하면 계약을 파기해도 좋다”는 추가 계약 조건까지 내걸었다. 이와키 구단 관계자는 재검토 끝에 전서호의 영입을 확정했다.

김 회장은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말하는 데 기업 경영하면서 5대양 6대주를 돌며 제조, 수출만 했다. 국제 업무·교류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강점이 있다. 학교 이사장으로 자리만 지키는 게 아니라 (기업가로) 강점을 발휘해 유망주를 돕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고 웃었다.

기업가로 평생 신념인 ‘고객만족 경영’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창업해서 40년간 회사를 운영한 데엔 비결이 있지 않겠느냐. 첫째도, 둘째도 고객만족 경영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고객인 학교도 마찬가지다. 축구부 선수에겐 아침에 눈 뜨면 운동하고, 공부하고 싶은 학교를 만들어줘야 한다. 학부모에겐 사교육비 등 걱정 없이 자녀의 대학 입학이나 프로팀 취업 등을 안겨야 한다.”

기업가의 사회 환원은 거창한 무늬가 아니다. 인재 양성의 취지를 나누며 이익의 환원이라는 책임을 얼마나 실천하느냐다. 김 회장은 이를 따르며 일반 학생을 넘어 남다른 축구 사랑을 바탕으로 종목 유망주에게도 커다란 꿈을 선물하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모델을 그린다. “우리는 여전히 ‘한국만의 유소년 시스템’이 명확히 없다. 일본 축구와 격차가 벌어진 가장 큰 이유다. 시스템이 불분명하니 학부모부터 축구에 ‘올인’하는 구조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프로에 가지 못한 선수도 체계적 관리 속 원하는 대학, 전공을 찾고 제2 꿈을 그린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보인고가 그런 모델을 만들겠다. 좋은 선수도 만들지만, 조금 부족한 선수여도 일본 등 해외에 있는 대학에 보내 새로운 꿈을 설계하도록 이끌겠다. 지켜봐 달라.”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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