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결국 수장이 고개를 숙였다. 신뢰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도 다짐했다. 반성, 사과 등의 단어를 입에 올렸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함구했다. 설상가상 이른바 ‘사법쿠데타’ 논란에 빠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후보와 단일화 격랑에 빠진 국민의힘 김문수 대통령 후보 이슈에 묻혔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꼴이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7일 서울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사옥에서 열린 ‘SK텔레콤(SKT) 사이버 침해 사고’ 관련 데일리 브리핑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출석을 요구받았지만 거부한 최 회장은 소비자에게 사과하기 위해 이날 브리핑 참석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SK그룹 총수이지만, SKT 미등기 임원이어서 법적 책임을 지는 위치는 아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유심 서버 해킹 사태 이후 SKT에 대한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려 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해 진정성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준비한 원고를 읽는 수준에 그쳤지만, 기업 총수가 직접 고개를 숙인 것만으로도 성난 민심을 어느정도는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 총수가 직접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게 국내 기업 문화를 고려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로 최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고개를 숙인건 2022년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 이후 처음이다. 반대로 보면,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SKT측은 유심 해킹 사태를 ‘사고’로 칭하며 심각성을 축소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동시에 거의 매일 해명자료를 언론에 제시하며 우호적인 여론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SKT가 창사이래 특정 사안에 이토록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대국민사과 형태로 진행한 이날 브리핑에서 최 회장은 “사이버 침해로 고객과 국민께 많은 불안과 불편을 초래했다. SK그룹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사고 이후 일련의 소통과 대응이 미흡한 것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고객 입장에서 살피지 못했다”고 다시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정부 조사에 적극 협력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고객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SK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보안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보안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최 회장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보보호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름의 대안도 제시했다.
관심을 모은 유심 교체에 대해서는 “유심을 교체하지는 않았고, 유심 보호 서비스에 가입했다”고 답했다. 이번 사태 이후 번호이동 등을 포함한 해지 위약금 면제에 대해서는 “이용자 형평성 문제와 법적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SKT 이사회가 논의 중이고, 좋은 해결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서도 “나는 이사회 멤버가 아니어서 드릴말씀은 여기까지”라고 한발 물러섰다.
최근 국회 과방위에서 SKT 이용약관을 근거로 “위약금 면제를 당연히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했지만,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거듭 강조한 유영상 CEO와 같은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그럼에도 ‘믿어달라’고 읍소했다. 최 회장은 “고객 신뢰는 SK그룹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앞으로도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며 “SK그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도록 다시 한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zzang@sportsseoul.com

■다음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과 입장 전문
최근 SK텔레콤의 사이버 침해 사고로 인해 고객분들과 국민들께 많은 불안과 불편을 초래했습니다. SK그룹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매장까지 찾아와 오래 기다리셨거나 해외 출국을 앞두고 촉박한 일정에 마음 졸이신 고객분들의 불편은 더욱 크셨습니다. 또, 지금도 많은 분들이 피해가 없을지 걱정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특히 사고 이후 일련의 소통과 대응이 미흡했던 점에 대해서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고, 이는 저를 비롯한 경영진 모두가 뼈아프게 반성할 부분입니다. 고객뿐만 아니라 언론, 국회, 정부기관의 질책은 마땅한 것이라 생각하며, 이를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일단 정부 조사에 적극 협력하여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고객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우선 저희를 믿고 유심보호서비스를 가입해주신 2400만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심 교체를 원하시는 분들도 더 빠른 조치를 받으실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이와 별도로 SK 전 그룹사를 대상으로 보안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보안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보보호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객관적이고 중립적 시각에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아울러,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해 일선에서 애써주고 계신T월드, 고객센터, 정부 및 공항 관계자, 그리고 회사 구성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객의 신뢰는 SK그룹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SK그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살피겠습니다. 다시 한번, 불편을 겪으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문제 해결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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