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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백한 달빛과 어스름한 별빛 차가운 하늘 아래 빛을 발하고 있는 평창 메밀꽃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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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포기할 만하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손을 뻗어 쥐려 하면 고개 돌려 도망가고 막 그런다. 봉평 메밀꽃밭의 달이 꼭 그렇다. 문학 속 그 감동을 똑같이 느껴보기 위해 찾은 ‘월하의 꽃밭’은 정말이지 인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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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꽃이 새하얗게 올라오고 있는 가을의 문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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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도 달이 차올랐을 때 메밀밭을 갔다. 그날의 달은 쟁쟁했지만 메밀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다. 또 한번 갔었다. 그땐 메밀꽃은 제법 피었지만 달이, 그 큰 달이 얇은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정말 자연이란 야속하고 잔인하기만 하다.젖니처럼 희고 자그마한 메밀꽃이 파란 대에서 툭툭 터지기 시작했다. 불어온 서늘한 바람과 초가을 땡볕을 맞고 순식간에 봉평 푸른 들판을 온통 뒤덮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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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강에서 가을을 낚는 플라이낚시가 인기를 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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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강에는 기운 센 열목어가 돌아다닌다. 차가운 물에서 더욱 힘찬 꼬리짓을 펼치는 열목어를 보고 플라이 낚시꾼들이 모인다. 햇볕이 쨍쨍 비치고 낚싯줄이 가을 바람을 가른다. 이것이 효석문화제를 맞은 평창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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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평은 지금 그야말로 ‘메밀꽃 필 무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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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의 화원이날따라 휘영청 둥근 달이 떴다. 음력 열사흐레. 작품 속 보름달은 아니지만 수막새보다는 볼록한 구분(九分) 달이 어둔 하늘을 채웠다. 오늘에야 기필코 볼 수 있으리라, 창백한 달빛 아래 새하얀 메밀꽃밭을. 고운 달은 ‘자취하는 여자친구’처럼 늦게까지 함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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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을 알리는 봉평 메밀꽃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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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을 알리는 봉평 메밀꽃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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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본 메밀꽃밭이 떠올랐다. 아직까진 푸른색이 더 많지만 12월 새벽녘 슬쩍 다녀간 싸리눈처럼 가녀린 대마다 꽃망울이 송송 맺혔다. 폭염이 휩쓸고 간 평창 봉평의 언덕을 메밀꽃이 슬슬 덮고 있는 중이다.
저녁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밤을 기다렸다. 공기 좋은 곳에 오면 으레 챙기던 생맥주 한 잔도 나중으로 미뤘다. 풀벌레가 울어대는 평창강변 메밀밭으로 갔다. 비록 가산(구로동이 아니라 이효석의 호다)이 이야기했던 봉평은 아니었지만 나도 허생원이 아니니 상관없다. 단지 가을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달밤의 메밀꽃을 또렷이 보고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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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하의 메밀꽃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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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참 환하다. 오랜만이다. 월하의 정인처럼 어스름한 빛을 온몸에 받으며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봉평은 산둥반도와 제법 떨어져 있는 덕에 하늘도 맑아 달이 비추는 능선까지 또렷하다. 차의 헤드라이트를 껐다. 갑자기 커튼 같은 어둠이 밀려와 캄캄하다. 고막만 섬세해진다.
오분 쯤 지났을까. 동공이 확장된 덕에 눈이 밝아진다. 형광같은 꽃밭이 펼쳐진다. 허생원이 걷던 그 길가 메밀꽃밭이 마침내 내 앞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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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꽃 달빛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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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위에 뿌린 굵은 소금, 아니 누군가 쏟은 큐빅 한 자루. 아무튼 새하얀 꽃잎이 양탄자처럼 산그림자까지 펼쳐진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 선선한 밤, 나풀거리지 않고 꼿꼿이 서서, 깜깜한 밤에 대항하는 꽃밭이다. 하얀 꽃 위 또 하얀 달, 관상용으로 가꾼 것도 아닐진대 지극히 아름답다. 꽃밭에 하반신을 담근 채 꽃바다를 헤엄치고 싶다. 오색단풍의 가을을 맞기 전 미리 준비된 순백의 서막이 열렸다.
넋 놓은 내 머리 위로 점점 타오르는 달이 허연 빛살을 휘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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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같이 영롱한 백일홍 꽃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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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꽃밭꽃이 지고나면 메밀이 영근다. 겨우 날벌레 크기나 될락말락한 놈이다. 콧속에 구수한 향을 가득 채우고 입안에 까끌까끌 혓바닥을 문지르는 그 메밀 싱아를 잉태한 꽃을 보노라니 여름을 보내버린 아쉬움을 달래기 충분하다.
메밀은 사실 화초가 아니다. 척박한 조건을 이겨내고 목숨을 잇는 숭고한 삶의 의미하는 작물이 메밀이다. 한민족 ‘맥(貊)’이 살았던 바이칼호와 중국 동북부, 아무르강 일대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메밀은 대대로 척박한 땅에서 재배했다. 밀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었던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한 식량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벗이다. 겨울에 햇메밀을 갈아 국수도 뽑고 전도 부쳐 먹었던 중요한 곡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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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강 둔치에 화려한 백일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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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또는 멥)’는 찰기가 없는 곡물을 뜻하는 접두사로 메밀은 특성이 끈끈하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등 투박하다. 하지만 단백질 함량이 높고 섬유소와 비타민이 풍부한 메밀은 최근 그 맛과 영양을 인정받아 냉면 등 고급 식품의 중요 웰빙 식재료로서 인기가 높다.
백일홍도 한가득 피어있다. 올해 평창읍 평창강 일대 둔치에 조성해놓은 백일홍은 메밀꽃과는 또다른 화려한 컬러로 유혹한다. 수십종의 백일홍이 탐스럽게 피어나 진록의 둔치, 푸른 강물과도 퍽 조화롭다. 가을 볕을 받아 현란한 색을 발하는 꽃밭은 가을님이 오시는 길을 환영하는 ‘레드 카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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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향을 느낄 수 있는 이효석문학의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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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만으로는 도저히 엉덩이가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고원에서 시원한 가을 바람을 미리 선불로 당겨서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이제 선선하니 걸어서 여행하기도 딱 좋을 때고 평창강에 돌아다니는 열목어를 공략할 플라이 낚시의 계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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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세좋고 물좋은 평창은 플라이낚시 명소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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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낚시는 조금 낯설다. 9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알려지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때마침 1992년 개봉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의 영향도 제법 컸다.
영국의 귀족 낚시 게임에서 시작됐다는 플라이낚시는 영화처럼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노끈과 실을 묶어 직접 만든 미끼를 쓰고 ‘캐치 앤드 릴리즈(잡고 놓아주기)’ 등 친환경 낚시다. 공격적이면서도 방어적이고 동적이면서 정적인 묘한 매력이 가득한 것이 플라이 낚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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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이낚시는 손으로 만든 가짜 미끼를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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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들어가 강가와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휙휙’ 훅(hook.미끼)을 던져 고기를 낚는 손맛을 즐긴다. 플라이낚시는 굉장한 운동이 된다. 계곡과 강바닥을 종일 걸어다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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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이낚시는 낚싯줄을 던져 슬그머니 미끼를 내려놓는 ‘캐스팅’기술이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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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에서의 브레드 피트 흉내를 내지말고 줄을 흔들다 멀리 던진다. 빠르게 날아간 줄을 순간적으로 당겨 끝에 달린 미끼를 수면에 슬쩍 내려놓으면, 물 속 고기가 벌레인 줄 알고 덥석 삼킨다. 이를 캐스팅이라 한다. 플라이낚시 마니아 박상현 씨는 “팔을 ‘시계고환’처럼 8시와 10시 방향 사이로 왔다갔다 흔들다 순간 멈추면 살짝 내려앉는다”고 조언했다.
평창에선 주로 비가 온 다음에 수량이 풍부할 때 송어와 열목어, 산천어를 공략하는데 연어철엔 양양으로 넘어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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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이낚시 조사 박상현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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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새벽 출조가 좋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영화 포스터도 새벽이다. 아침까지 낚시를 하다가 모두 놓아주고 돌아온다. 빈손으로 오지만 가을을 낚았다. 이만 여름을 보내주련다. 역시 흐르는 강물처럼.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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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닉스파크 웰니스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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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가볼만한 곳=봉평 고랭길은 휘닉스파크에서 시작한다. 고랭길 입구~초봉~계곡광장~삼구쉼터~중봉~무이밸리 삼거리~최고봉~움치 사거리~정자~이효석문학의숲~이효석생가터~이효석문학관~남안교~봉평장터(총 9.3㎞) 약 2시간30분 소요. 휘팍에는 짧게는 가족들이 힘들이지 않고 도는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는 웰니스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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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읍 장원 한우 등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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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봉평 일대에는 메밀 식당들이 많은데 막국수는 물론이고 다양한 토속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메밀막국수는 물과 비빔 등 2종류가 있지만 사실 현지 토박이들은 물막국수를 거의 먹지 않는다. 냉면과 달리 막국수는 쓱쓱 양념장에 비벼먹다 육수를 부어 훌훌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밀마당은 국수를 잘 말아낸다. 순면은 아니지만 메밀면의 투박한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면에 매콤달콤한 양념을 넣고 비벼먹는 재미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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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은 눈으로만 즐기는 게 아니다. 미가연 이대팔 쓴메밀막국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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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한장 넣고 얇게 부쳐낸 메밀전과 메밀만두, 김치와 두부 등 속을 다져넣고 말아낸 메밀전병 등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메밀요리가 가득 차려졌다. 쓴메밀을 사용한 ‘이대팔 쓴메밀 막국수’의 마가연은 두 말할 필요없이 유명한 곳이다.(033)335-8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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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운갈비찜. 평창읍 장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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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아 지방을 축적하기 시작한 한우를 맛보기에도 최고다. 평창읍 올림픽 시장 옆 ‘장원’은 질좋은 등심구이로 유명한 집, LA갈비를 전골식으로 끓여낸 매운갈비찜과 청국장도 맛이 좋다.(033)332-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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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 봉평 휘닉스파크 정상에서 본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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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곳=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는 9월 4~13일까지 열리는 ‘메밀꽃 필 무렵, 2014 평창 효석문화제’를 방문객들이 보다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무료셔틀을 운영한다. 정확한 시간과 코스는 휘닉스파크 홈페이지(www.pp.co.kr)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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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테마투어는 효석문화제를 다녀오는 상품을 판매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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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상품=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는 오는 9월 22일까지 매주 금, 토, 일요일 서울 시청역에서 버스로 출발해 봉평 효석문화제 봉평메밀꽃밭과 대관령양떼목장, 강릉의 경포대해변 등을 다녀오는 당일 여행상품을 판매 중이다. 또한 10월까지 매주 토, 일요일 출발해서 서산 개심사와 홍성 남당리 대하축제, 청양 칠갑산 알밤줍기체혐 여행상품도 함께 판매한다. 모두 3만2900원. (02)733-0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