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양오봉·송하진. 장영달.양영두.곽영길 “시대의 양심 잊지 않겠다”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 추모의 장을 적시다

청렴·용기·유머로 남은 한승헌의 삶...“지역의 큰 어른 떠났지만 정신은 살아 있다”

[스포츠서울 ㅣ 고봉석 기자] 전북이 낳은 시대의 양심, 한승헌 전 감사원장을 기리는 4주기 추모식이 20일 오전 11시 전북대 진수당에서 엄숙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 속에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장영달 우석대 명예총장, 양오봉 전북대 총장, 윤석정 (사)산민 한승헌 기념회 이사장(전북일보 사장), 한명규 JTV부회장, 송하진 前 전북지사, 곽영길 재경전북도민회 회장, 송기인 신부, 시민사회 인사와 유족 등 3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삶과 뜻을 기렸다.

행사는 고인의 생애를 담은 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스크린에는 군산에서 태어나 전주북중과 전주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인권변호사와 감사원장으로 살아온 한승헌의 궤적이 차분히 흘렀다. 참가자들은 박수보다 침묵으로, 환호보다 숙연함으로 고인을 맞이했다. 행사장 곳곳에는 “권력보다 양심을 택한 사람”, “전북의 자랑, 한국의 양심”이라는 말이 조용히 떠돌았다.

추모식장은 단순한 의례의 자리가 아니었다. 시대를 통과한 한 사람의 정신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정치권 원로와 종교계, 언론계, 학계, 시민사회가 함께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인이 남긴 울림의 크기를 짐작하게 했다.

윤석정 (사)산민 한승헌 기념회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한승헌 선생은 전북의 자존심이자 언론과 법조계의 큰 스승이었다“ 며 ” 진실과 정의를 향한 발걸음을 오래 기억하겠다.” 고 말했다.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인사말에서 “한승헌 선생은 학문보다 실천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분이었다“며 ”. 청년들에게 양심의 길을 가르친 참교육자였다.” 말했다.

권노갑 전 의원은 추모사에서 “한승헌 선생은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며”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바른말로 시대를 깨운 분”이라고 추모했다.

곽영길 재경전북도민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선생은 품격과 원칙, 유머를 함께 지닌 드문 지도자였다“ 며 ”남긴 정신은 오늘 언론에도 큰 이정표“라고 말했다.

양영두 흥사단 상임대표는 “한승헌 선생은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시민정신의 표상이었다”며 “정의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 불러야 할 이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이 선생의 삶을 배우는 일이 곧 미래를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송하진 전 전북지사는 추모식장에 마련된 사진 앞에서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다. 그는 “전북이 어려울 때마다 늘 따뜻한 조언을 주셨던 큰 어른”이라며 “선생의 낮은 자세와 높은 뜻을 후배 세대가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의 절정은 가수 장사익의 추모 노래였다. 장사익은 특유의 깊고 쉰 듯한 목소리로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노래가 시작되자 행사장은 더 깊은 침묵으로 잠겼다. 몇몇 참석자는 눈시울을 훔쳤고, 유족들은 서로 손을 꼭 잡았다. 봄날은 가도 사람의 뜻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듯, 장사익의 목소리는 한승헌이라는 이름을 다시 현재로 불러냈다.

한승헌 선생은 엄정한 원칙주의자였지만 유머도 잃지 않았다. 어느 자리에서 “선생님은 왜 늘 바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세상이 자꾸 틀어지니, 바로 세우러 다니느라 바쁘지요.”

한승헌은 1934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전주북중·전주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판검사의 길 대신 변호사의 길을 택했고, 1970~80년대 유신과 군사정권 시절 민주인사·언론인·학생들을 변호한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남겼다.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양심을 굽히지 않았으며 여러 차례 옥고도 치렀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감사원장을 맡아 공직사회 개혁과 청렴성 강화에 힘썼다. 법률가이자 문필가로도 활약하며 시대의 기록을 남겼고, 끝까지 겸손과 품격을 잃지 않았다.

행사장은 슬픔보다 존경이 더 짙게 흐르는 자리였다. 검은 정장 차림의 원로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고인을 회고했다. 누군가는 “이런 분이 다시 나오겠느냐”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래도 이런 분이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고 답했다.

분향대 앞 국화는 조용히 놓였고, 고인의 미소 짓는 사진은 참석자들을 맞았다. 무대 조명은 밝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기억은 환했다. 한승헌이라는 이름은 이미 한 사람의 이름을 넘어 시대의 기준이 되어 있었다.

봄날은 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봄날이 간 뒤에도 남는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권력보다 양심을 택했고, 명예보다 정의를 택했으며, 말보다 실천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4주기 추모식은 죽음을 기리는 자리가 아니라, 그가 남긴 기준을 오늘 다시 묻는 자리였다. 전북은 그를 기억하고, 시대는 아직도 그를 필요로 한다.

kob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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