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영화 ‘넘버원’에서 장혜진은 또 한 번 엄마다. 하지만 그 ‘또’라는 말은 장혜진의 앞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장혜진이 연기하는 엄마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같은 호칭 아래 전혀 다른 얼굴과 온도를 가진다. ‘넘버원’ 은실 역시 그렇다. 아들이 밥상 위 엄마의 남은 삶의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는 순간에도 은실은 울지 않고 살아간다.
장혜진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봉 시기도, 촬영지가 제 고향인 부산이라는 점도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고 말했다.

‘넘버원’에 대해 장혜진은 “신파라기보다는 새로운 감정의 방식”이라며 “예전엔 울어야만 슬픔이 전달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패러다임이 많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같다”고 말했다.
‘넘버원’의 출발점은 엄마의 밥이다. 아들 하민(최우식 분)이 엄마의 음식을 먹을수록 엄마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설정은 가장 강력한 눈물 치트키다. 그러나 장혜진은 이 장치를 단순한 감정 소모로 해석하지 않았다.
“엄마 연기를 많이 하긴 하지만, 모든 엄마는 다 다르잖아요. 성향도 다르고, 표현 방식도 달라요. 엄마라는 이름으로 ‘퉁칠 수 없는’ 존재들이에요. 그래서 엄마 역할을 할 때마다 늘 새롭고, 여전히 재미있어요. 엄마를 하나의 캐릭터로 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은실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큰아들까지 사고로 잃은 인물이다. 눈물이 메말랐을 법도 하지만, 은실은 여전히 밥을 짓고, 집을 닦고, 아들을 키운다. 그래서 장혜진은 은실을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장혜진은 “가사 노동을 하면서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집을 정리하는 모습, 그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삶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며 “너무 슬픈 엄마, 멀리 있는 엄마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각자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우리 엄마들의 얼굴이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하민은 “서울에선 엄마 또래의 여성들이 전업주부가 아닌 교수나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장혜진이 특별히 사랑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는 “엄마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힘들었을 수는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불쌍해서 어떡하냐’가 아니라 ‘열심히 살았네’라고 말해주는 게 더 큰 위로 아니겠냐”고 말했다.
숫자가 보인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장혜진은 오히려 그 점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장혜진은 “제 숫자도 줄어들고 있고, 엄마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그래서 매번이 소중하다. 그런 감각이 이 영화엔 따뜻하게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장혜진은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큰아들을 잃었지만, 남은 아들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은실처럼”이라며 “밥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채우는 일이다. 밥은 애정이고 관심이다. 누구와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취향이 뭔지. 다 그 사람의 이야기”라고 전했다.
장혜진이 엄마 역할을 맡은 지 어느 덧 9년째다. 지난 2019년 영화 ‘기생충’에서도 엄마 역할을 맡아 아카데미까지 진출한 장혜진은 계속되는 엄마 역할을 부담이 아닌 감사로 받아들인다.
“다들 엄마 역할을 꺼렸나 보더라고요.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저는 일찍 이 역할을 잘 만난 편이라고 생각해요. 가늘고 길게 가고 싶어요. 상을 받는 것보단 재밌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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