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한국 축구는 불행하다.
팔레스타인과의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첫 경기가 열린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장 분위기는 냉랭했다. 6만명에 육박하는 많은 관중이 좌석을 채웠지만, 관중석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냉혹했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이제 막 복귀전을 치르는 대표팀 홍명보 감독을 비판하는 외침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정 회장과 홍 감독을 겨냥하는 현수막도 잔뜩 걸렸다.
홍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 이후 10년 만에 대표팀 복귀전을 치렀다.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던 홍 감독이지만, 그는 시즌 도중 울산HD에서 나와 대표팀으로 이동해 비판을 받았다. 선임 과정조차 메끄럽지 못했다. 여전히 대중은 그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경기 후에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수비의 핵심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골대 위 응원석으로 다가가 야유를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김민재는 마음이 상한 듯 응원석을 향해 인사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사실상 갈등 양상에 접어든 모습이다.
관중의 야유를 뒤로하고 선수들은 홍 감독을 향한 지지를 요청했다. 주장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속상하다. 많은 팬의 입장을 내가 대변할 수는 없다. 팬도 원하는 감독님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주장으로서 팀을 생각한다면 응원과 사랑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 팬과 선수의 관계는 좋아야 한다. 하나로 뭉쳐 승리를 응원하기 위해 오셨으니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얘기, 격려해주시면 그 원동력으로 더 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우리가 우리의 적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팬 입장에서도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이강인(파리생제르맹)도 마찬가지로 “선수들은 감독을 100% 믿고 따라야 한다. 감독님이 이기는 축구를 만들어주실 것이라 믿는다. 많이 노력하겠다. 축구 팬 여러분도 당연히 아쉽고 화가 나겠지만 그래도 많은 응원을 보내주시면 좋겠다”라며 홍 감독 지지를 부탁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김민재는 “선수 응원을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라며 “우리가 시작부터 못한 건 아니지 않느냐. 왜곡해서 제 SNS에도 찾아오시더라. 못하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분이 아쉬워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촉구에도 여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지금의 비판은 오만전 한 경기 때문에 나온 게 아니다. 정 회장의 계속되는 헛발질과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선임된 홍 감독을 향한 목소리일뿐이다.
A매치 일정을 마치면 한국 축구는 ‘사회 이슈’가 된다. 국회 문체위 여야 간사는 홍 감독 선임과 관련해 절차의 적절성 등을 따지기 위해 정 회장과 홍 감독 등 협회 관계자들을 24일 현안 질의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일단 10일 오만과의 2차전이 중요하다. 만에 하나 여기서 미끄러지면 한국은 3차 예선 1~2차전을 승리 없이 마감할 수 있다. 남은 경기를 통해 만회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분위기를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국 축구가 더 불행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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