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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임재훈 크리에이터] 오스트리아의 안나 키젠호퍼는 빈 공대, 캠브리지대 등을 거친 수학 박사다. 현재는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런 그녀가 2020도쿄올림픽 사이클 여자 개인도로 경기에 출전했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 마디로 ‘부캐’인 운동선수로 금메달을 딴 것이다.
이런 모습은 엘리트 체육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선 쉽게 볼 수 없다. 엘리트 체육이란 소수의 재능 있는 유망주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말로 국민 누구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생활체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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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엘리트 체육의 시작은 박정희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자유형 레슬링 페더급에서 양정모 선수가 한국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자 박정희 전(全) 대통령은 국위선양을 위한 엘리트 체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국립체육대학 (현 한국체육대학교)를 설립하고, 태릉선수촌을 탄생시키며 한국 엘리트 체육의 기반을 다졌다. 덕분에 한국은 국제대회에 출전해 양궁, 태권도, 유도, 쇼트트랙 등 여러 분야에서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선수 육성을 통해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병폐를 드러냈다. 대표적인 것이 ‘성적 지상주의’ 문화이다. 국위선양의 도구로써 활용됐던 엘리트 체육에서 운동은 성적 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 지도자들은 어떻게든 실적을 쌓기 위해 지도라는 명목으로 선수들을 폭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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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 폭행을 당했던 선수들이 다시 지도자가 되어 같은 방식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게 되면서 이런 폭력이 대물림됐고, 선수들 사이에서도 폭력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발생해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와 달리 대중들이 결과에 따라 선수를 평가하기보다 도전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아쉽게 4등을 한 선수들에게도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체육계 내에서는 성적 지상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학생선수들은 폭력에만 상처받는 것이 아니다. 훈련을 이유로 수시로 학교 수업에 불참하게 되면서 학습권마저 박탈당하고 만다. 성적을 내기 위해 오로지 운동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게 되면서 학교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일명 ‘운동 바보’로 전락하게 된다. 이 선수들이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운동선수로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큰 부상을 당하거나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 대안이 없게 되어 진로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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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권, 유럽권 국가들에서는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실제로 한국 럭비대표팀 선수이자 학창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안드레 진 코퀴야드는 과거 인터뷰에서 대학교 시절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었고, 덕분에 졸업 후 럭비를 그만두게 됐을 때도 상하이에 있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체육계가 이런 문제들을 전혀 고쳐나가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故) 최숙현 사태와 이재영·이다영 자매로 촉발된 스포츠계 학교폭력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온라인에 모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폭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체육계에서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는 하지만 소수의 집단으로 이뤄진 엘리트 체육 구조의 폐쇄적인 특성상, 체육계는 자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똑같은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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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엘리트 체육을 폐지하고, 독일과 같은 국가들처럼 체육 시스템을 생활체육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한국처럼 스포츠 시장이 작은 나라에서 국가 지원을 줄이고, 오로지 생활체육으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아직 스포츠가 국력의 한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에서 엘리트 체육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결국,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을 어떻게 조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도쿄올림픽 폐막 후 대한체육회 결산 기자회견에서 신치용 진천선수총장은 “(이번 대회에서) 어린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낸 만큼,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다시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회 성적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서 체육계가 고질적으로 겪어왔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한국 엘리트 체육이 지속 가능한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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