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정찬헌, 아깝게 노히트 노런 놓치며 완봉승
LG 정찬헌이 지난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KBO리그 SK와 LG의 경기 9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SK 고종욱을 좌익수 뜬공으로 잡으며 완봉승을 거둔 뒤 포수 유강남과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인천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어차피 그 구속이 그 구속이다. 세게 던진다고 구속이 특별히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변화의 조짐은 지난해부터 드러났다. 비록 기간은 짧았지만 2019년 마무리투수로 보여준 한 달 동안 활약은 더할나위 없었다. 늘 스스로를 위기상황으로 몰어넣었던 제구불안이 사라졌다. 2018년까지는 순간적으로 제구가 흔들리며 위기를 자초해왔다. 우타자를 상대할 때 이따금씩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몸에 맞는 볼도 범했다. 손쉽게 타자를 돌려세우다가도 허무하게 출루를 허용하면서 무너졌다. 하지만 ‘힘을 빼고 던지는 법’을 터득했고 ‘달인’을 연상케 하는 투구로 마운드를 굳건히 지킨다. 고행을 극복하고 선발투수로 화려하게 꽃피운 LG 우투수 정찬헌(31) 얘기다.

장점이 너무 많았다. 150㎞에 육박하는 포심 패스트볼에 투심 패스트볼, 컷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스플리터까지 구종도 다양했다. 타고난 감각으로 빠르게 구종을 습득하고 실전에 적용했다. 실패 후 흔들리지 않는 ‘강철 멘탈’도 지녔다. LG는 물론 타팀 지도자들도 정찬헌의 이런 모습에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트레이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상대팀에서 가장 먼저 원하는 선수도 늘 정찬헌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장점은 단점으로 작용했다. 스스로 “구종이 너무 많다보니 마운드 위에서 고민도 많았다. 어떨 때는 내가 타자와 ‘가위바위보’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돌아봤다. 2018년 풀타임 마무리투수를 맡은 그는 27세이브를 올렸지만 블론세이브도 6개를 기록했다. 몸에 맞는 볼 6개, 볼넷 24개가 나왔는데 이중 대부분이 2아웃을 잡은 후 혹은 9회 첫 타자를 상대로 나왔다.

시행착오 끝에 반등했다. 지난해 정찬헌은 삼진 욕심을 내려놓았다. 투심 패스트볼과 컷패스트볼, 커브로 구종을 한정지었다. 투구 템포가 빨라졌고 쉽게 타이밍을 빼앗았다. 늘 초구 땅볼 유도를 목표로 삼으며 개막전부터 9연속경기 무실점 6세이브를 기록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을 바라봤다. 하지만 하늘은 환골탈태한 정찬헌에게 시련을 내렸다. 허리디스크 재발로 5월말 시즌아웃됐다.

이미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과 디스크 수술로 수술대에 오른 그였다. 세 번째 수술 후유증으로 투구폼이 변했고 구속도 줄었다. 투구 후 이틀간은 통증을 피할 수 없다. 연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발투수로 보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높은 벽과 마주했지만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않다. 올해도 정찬헌은 욕심을 내려놓는 ‘무심투’로 굳건히 마운드를 지킨다. 평정심을 유지해 자신을 지배하면서 경기도 지배하고 있다. 올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 경기인 지난달 16일 잠실 키움전부터 지난 27일 문학 SK전까지 5연속경기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3자책점 이하)와 팀승리로 임무를 완수했다.

특히 27일 문학 SK전에서 정찬헌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8회까지 노히트 행진을 이어가다가 9회 아웃카운트 2개 남겨놓고 첫 안타를 맞았다. 노히트노런이 눈앞에 있었는데 1사 만루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제이미 로맥, 고종욱 등 만만치 않은 타자와 마주했다. 홈런이라도 허용하면 연패 숫자는 ‘7’에서 ‘8’로 변한다. 천국과 지옥, 기로에 서 있었다.

동요는 없었다. 브레이킹볼 4개 후 5구 포심 패스트볼로 로맥을 삼진처리했다. 마지막 타자 고종욱과 상대할 때까지도 경기 내내 그랬듯 낮은 로케이션을 유지했다. 8구 승부 끝에 고종욱을 낮게 깔린 투심 패스트볼로 외야플라이 처리했다. 지긋지긋한 연패 행진을 끊으면서 개인 통산 첫 번째 완봉승을 달성했다.

[포토]LG 정찬헌, 노히트 깨졌지만 생애 첫 완봉승
LG 정찬헌(오른쪽 둘째)이 지난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KBO리그 SK와 LG의 경기 9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SK 고종욱을 좌익수 뜬공으로 잡으며 완봉승을 거둔 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인천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진화의 원동력은 마음가짐이다. 정찬헌은 “마운드 위에서 쓸데없는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그 구속이 그 구속이다. 세게 던진다고 구속이 특별히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며 “지난해부터 힘을 빼고 던진다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 늘 밸런스대로 던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무리하게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제구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제구가 잘 되니 볼배합도 한결 편하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거창한 개인 목표는 없다. 한 번 더 수술하면 야구를 못할 수도 있다. 건강히 시즌을 완주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선발 등판할때 팀이 이겼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려놓으면서 진리를 깨달았다. 단점으로 작용했던 너무 많은 구종은 비로소 장점이 됐다. 올시즌 6번 선발 등판해 4승 1패 평균자책점 2.56, 특급 활약을 이어가는 정찬헌이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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