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감독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의 김민정 감독이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결승전 스웨덴전을 앞두고 훈련에서 라인을 보고 있다. 강릉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태평양 우승 때
김민정(오른쪽) 여자대표팀 감독이 부친 김경두(오른쪽 세번째) 경북컬링훈련원 원장, 대표팀 동료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선수권 우승 이후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다. 제공 | 경북체육회

[강릉=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사실 민정이도 선수로 뛰어야 하는데….”

한국 컬링 역사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을 지휘한 김민정(37) 감독은 ‘컬링 신드롬’의 숨은 영웅이다. 김 감독은 2010년 경북체육회 실업팀 창단 멤버다. 4년 전 소치 대회 출전을 노렸으나 경기도청에 태극마크를 내줬다. 선수로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현역 선수로 뛰어도 될 만큼 감각과 시야를 지녔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다시 태극마크를 경북체육회가 되찾아온 상황에서 그 역시 왜 선수로 뛰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의 부친(父親) 김경두 대한컬링경기연맹 전 부회장 겸 경북컬링훈련원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딸이 선수로 뛰긴 해야 하는데…”라고 웃는 이유다. 하지만 김 감독이나 김 원장이나 일찌감치 선수로 올림픽을 밟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진짜 꿈’은 평창 메달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창에서 호성적을 바탕으로 진정한 국내 컬링 문화를 보급하자는 데 있었다. 그러려면 현장 감각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했다. 국내엔 국제 경험을 다수 갖춘 지도자가 부족하다. 타 종목과 다르게 단일 소속팀이 국가대표로 나서기에 더욱 그렇다. 김 원장은 “(감독을) 할 사람이 없는데 어쩔 수 있느냐”며 “민정이도 지도자로 희생하면서 평창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대회 전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컬링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4년 전)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못했다. 대표 선발 방식도 문제가 됐는데 당시 예선 6전 전승하고도 결승에서 져 올림픽 티켓을 놓쳤다”며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당시 해설위원 자격으로 소치로 날아가 라이벌 팀 경기를 바라보는 것도 그에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김경두 양영선
김민정 감독 부친 김경두 원장과 어머니 양영선 씨의 대화 모습.

◇자존심 때문에 ‘훈장 포기’한 할아버지 닮은 승리욕

레슬링 선수 출신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김 감독은 악바리 근성을 지닌 여성 지도자다. 공부도, 운동도 모두 잘했다. 대구 지봉초, 정화여중, 경북여고 시절 전교 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다. 대학도 흔히 말하는 ‘이름 있는 대학’에 합격했으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 삼수까지 했단다. 승리욕은 운동할 때 더욱 강인하게 발휘됐다. 김 원장은 “아내가 몸이 약해서 같이 수영장을 다녔는데 딸(김민정)하고 아들(김민찬·남자 컬링팀)하고 함께 했다. 아이들이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전문 강사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민정이는 비등록 선수 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종종 했다”고 회상했다. 또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도 참 잘 탔다. 자연스럽게 가족이 스포츠에 노출이 됐는데 민정이는 유독 승리욕이 강했다”고 했다. 김 원장이 가족과 운동을 즐기다가 30대에 컬링과 연을 맺은 뒤 김 감독도 자연스럽게 스톤을 만졌다. 당시 체육교사이자 한국 최초 컬링 국제심판 자격증을 획득한 동생 김경석 심판과 어우러져 ‘가족 컬링대회’를 열었는데 이때도 김 감독은 지기 싫어했다.

김 원장은 “딸이 운동한 ‘제 아비’ 뿐 아니라 고령이 되신 할아버지까지 닮은 것 같다”며 “아버지(김민정의 할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인데 당시 꽤 등급이 높은 무공훈장 대상자다. 그런데 젊을 때 상해군인 소리를 듣기 싫고, 사회에서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며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굳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스스로 무언가 하겠다는 의지였는데 당시엔 아버지가 원망스럽더라. 그런데 나 역시 50이 넘으니까 아버지의 자존심을 이해하게 되더라”고 웃었다. 김 감독이 이같은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아이스 위에 설 때 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신에게 엄격하다. 아버지는 때론 걱정이 된다. 김 원장은 “너무 딸이 그러면 걱정이 되지 않습니꺼”라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씁쓸하게 웃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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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부친의 대구컬링강습회 시절 참석한 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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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캐나다 인스 여자 컬링 챔피언십 우승 이후 현지 언론에서 한국 여자 컬링 우승을 쇼크로 표현한 캐나다 언론.

◇“민정아, 넌 왜 컬링을 하니”…아버지의 혼을 담다

2016년부터 경북체육회 지도자로 나선 김 감독은 컬링 1세대 아버지 노하우를 품는 것 뿐 아니라 자비로 해외 지도자 연수를 다녔다. 경북컬링협회 등 지역 내 후원도 많아지면서 국제 대회 참가 기회도 얻었다. 캐나다 그랜드슬램 등 컬링 선진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 강 팀과 경기 경험을 쌓았다. 성장을 거듭했다. 연구파 김 감독의 처절한 분석과 스킵 김은정을 중심으로 재능있는 후배들이 ‘언니’라고 부르며 한마음이 돼 따랐다. 국제 대회 상위권 입상도 늘었다. 하지만 늘 주요 토너먼트에서 고비를 넘지 못했다. 지도자로 부족하지 않느냐며 자책도 했다. 그를 붙잡은 건 초심. 뿌리가 돼 준 건 아버지였다. 김 원장은 “민정이에게 ‘너 왜 컬링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기기 위해서? 그건 아니다. 한국 컬링은 지금 이기는 게 우선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볼 수 있지 단기적인 성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내적 동기를 재설정했다. 이들의 수학한 경북컬링훈련원 내엔 2006년 당시 ‘꿈은 이루어진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러나 이후 두 개의 현수막이 더 걸렸다. ‘혼을 담아 마음을 쏜다’, ‘강한 컬링을 넘어 컬링 선진 문화를 향하여’라는 글귀다. 김 원장은 꿈 넘어 꿈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꿈인데 대통령이 됐다고 끝나면 비전이 없다. 대통령이 돼서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김 감독은 컬링 전술 연구 뿐 아니라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선수들과 등산, 조정을 하며 팀 워크를 다졌다. 산이라는 산은 다 가봤다. 지리산 천왕봉, 한라산 백록담 등을 올랐다. 10년간 친자매처럼 지낸 사이지만 목표를 설정하고 서로 끌어주고 당기다보니 모르던 마음을 교감했다. 더 끈끈해졌다. 눈앞의 성적이 아닌 한국 컬링 미래를 내다봤다. 그러니 성적은 저절로 따라왔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선수권 우승, 올림픽 직전 그랜드슬램 동메달 등 ‘팀 킴’은 내적으로 단단해지면서 완성형이 돼 갔다. 그리고 평창올림픽, 꿈의 무대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꿈의 팀’이 됐다.

김 감독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한국 컬링은 여전히 고속도로가 아니다. 가시밭길이다.” 연애사까지 다 아는 후배, 제자들과 함께 이룬 올림픽 메달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촉매제가 됐다. 김 원장은 “잘하는 게 아니라 ‘혼을 담아서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며 “이제 몇 개의 산을 넘었을 뿐”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이번 대회 타 종목에서 팀 워크 논란 등이 불거져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팀 킴’으로 불리는 컬링 태극낭자들은 실력 뿐 아니라 스톤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내는 높은 집중력과 서로에 대한 신뢰로 국민들에게 메달 이상의 가치를 심어줬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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