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대중음악계의 성공 공식이 바뀌었다. 다양한 가수들과 품앗이 하듯 안무를 맞춰보는 ‘챌린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신 대중이 자발적으로 갖고 노는 밈(Meme)이 흥행의 보증수표로 떠올랐다.
아이오아이(I.O.I)의 ‘갑자기’와 코르티스의 ‘레드 레드(RED RED)’, 아일릿의 ‘이츠 미(It’s Me)’까지, 최근 음원 차트 최상위권을 장악한 곡들에는 하나의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온라인상에서 강력한 밈을 형성하며 대중의 알고리즘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9년 만에 컴백한 아이오아이의 ‘갑자기’다. 후렴구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라는 애틋한 가사가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양의지 선수의 응원가 멜로디와 묘하게 겹친다는 대중의 우스갯소리가 시작이었다.
이를 캐치한 유튜브 채널들이 각종 리믹스 버전을 쏟아냈고, 구단과 소속사가 기민하게 움직여 실제 양의지 선수와 멤버들의 챌린지, 시구까지 성사시켰다. 단순한 온라인 유머가 멜론 ‘톱 100’ 1위라는 거대한 결과물로 이어진 순간이다.

아일릿의 ‘잇츠 미(It’s Me)’ 역시 밈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에서 붐이 곡의 테크노 비트에 맞춰 내뱉은 추임새가 숏폼을 강타했고, 한 유튜버가 이정현의 명곡 ‘와(Wa)’와 매시업한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아일릿은 이를 놓치지 않고 이정현을 직접 섭외해 챌린지를 진행하며 화제성에 쐐기를 박았다.

대형 기획사뿐만이 아니다. 중소 기획사 소속인 리센느는 밈이 가진 ‘역주행’의 폭발력을 증명했다. 자체 콘텐츠에서 멤버 미나미가 갸루 캐릭터로 분해 뜬금없이 외친 “거제 야호”라는 구호와 파라파라 댄스가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았다. 이 기상천외한 밈 덕분에 지난해 발매된 미니 1집 타이틀곡 ‘러브 어택(LOVE ATTACK)’이 멜론 일간 차트 20위권, 지니뮤직 50위권을 돌파하는 역주행의 기적을 썼다.
빅히트 뮤직의 신인 코르티스(CORTIS)는 아예 밈으로 세대를 규정하는 현상까지 만들어냈다. 곡 ‘영크리에이터크루’의 줄임말인 ‘영크크’는 트렌디한 젊은 층을 뜻하는 신조어로 자리 잡았고, 반대말로 ‘늙크크’, ‘올크크’가 파생됐다. 또한 ‘레드레드’의 ‘팔랑귀 팔랑귀’ ‘도가니 사리기’ 같은 독특한 가사들이 숏폼을 장악하며 데뷔 1년도 채 안 된 보이그룹이 대중성을 상징하는 멜론 월간 차트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팬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순수함이 흥행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과거의 K팝 마케팅이 기획사가 막대한 자본과 기획력으로 대중에게 ‘떠먹여 주는’ 하향식이었다면, 이제는 대중이 스스로 놀거리를 찾아 창조하는 상향식으로 흥행의 요인이 이동했다.

밈이 탄생하는 과정은 철저히 대중의 영역이자, 기획사가 억지로 유도할 수 없는 ‘운’과 ‘우연’의 산물이다. 대중은 기획사가 세팅해 놓은 정교한 세계관과 각 잡힌 군무 챌린지보다는 어딘가 엉성하고, 웃기고, 내 맘대로 변형하기 쉬운 빈틈(밈)에 열광하고 있다.
거대한 자본이 흥행을 보장하는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우연한 불씨를 재빠르게 발견하고, 대중의 놀이에 쿨하게 동참하며 판을 키워주는 ‘기민한 융통성’이 지금 필요한 역량이다. 대중은 이미 진지한 우상보다,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유쾌한 놀이 상대를 원하고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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