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2017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처음 얼굴을 알렸던 한 연습생은 어느덧 가장 바쁜 신예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보이그룹 재로(XRO)로 데뷔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렸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그 시간을 지나 윤재찬은 ‘배우’라는 새로운 길 위에 섰다. HBO 맥스 시리즈 ‘옷장 너머로’를 시작으로 tvN ‘반짝이는 워터멜론’, 디즈니+ ‘강매강’,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tvN ‘사랑은 외나무 다리에서’, SBS ‘트라이: 우리는 기적이 된다’까지 쉼 없이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여기에 올해 스크린 데뷔작 ‘살목지’가 손익분기점을 훌쩍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하면서 ‘배우 윤재찬’이라는 이름도 조금씩 대중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윤재찬은 “지금은 연기하는 게 너무 재밌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직은 모든 현장이 새롭고 신기하다는 그는 연기를 음악에 비유했다. 작곡을 전공했던 윤재찬은 “곡 작업할 때 드럼을 넣고, 기타를 얹고, 여러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아가지 않나. 연기도 비슷한 것 같다”며 “이 인물은 어떤 습관이 있을까, 어떤 말투를 쓸까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 음악 작업과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웃음에 닿기까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윤재찬은 가수 활동 시절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놨다. 윤재찬은 “정말 열심히 했다. 연습도 죽어라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나가고 데뷔도 했으니까 이제 조금씩 잘 풀릴 줄 알았다”며 “그런데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 코로나도 터지고 상황도 계속 어긋났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가 싶었다”고 말했다.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 손을 내민 건 소속사 대표의 한마디였다. “‘재찬아, 연기 좋아한다며. 한번 시작해볼래?’ 그 말이 계기가 됐다”는 윤재찬은 그렇게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특히 브라질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옷장 너머로’ 촬영은 윤재찬에게 결정적인 경험이 됐다.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히며 연기하는 시간이 윤재찬에겐 두려움보다 설렘에 가까웠다.

이후 윤재찬은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청춘물에서는 풋풋한 에너지를 보여줬고, 코미디 장르에서는 예상 밖의 얼굴을 꺼내 들었다. 특히 디즈니+ ‘강매강’에서 맡았던 악역은 윤재찬에게 꽤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윤재찬은 “코미디 장르에서 악역을 맡았는데 ‘진짜 악역 같았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며 “현장에서 선배님들이 긴장하지 말라고, 잘하고 있다고 해준 말들도 정말 큰 힘이 됐다. 그런 말들이 오래 남더라”고 털어놨다.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배우로서의 욕심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하이틴, 코미디, 공포물,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SBS 수목드라마 ‘오늘도 매진했습니다’까지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온 윤재찬은 특히 사극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 드라마 ‘주몽’을 보며 활쏘기를 따라 하곤 했다는 윤재찬은 “사극을 꼭 해보고 싶다. 검객이나 호위무사 같은 역할도 정말 욕심난다”며 “액션도 좋아하고, 피 터지고 처절한 분위기의 작품도 해보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서도 음악 역시 여전히 윤재찬의 삶 한편에 남아 있다. 지금도 꾸준히 곡을 쓰고 있다는 윤재찬은 언젠가 다시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하지만 지금 가장 즐거운 건 배우로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이다. 오랜 방황과 좌절을 지나온 만큼 지금의 순간은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세요. 주변에서 ‘재찬이 연기 잘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그렇게 행복해하시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했는데, 부모님이 마음 편하게 웃으신 시간이 사실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윤재찬은 더 오래, 더 멀리 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만의 얼굴을 가진 배우로 남고 싶다는 바람도 조심스럽게 전했다.

“저는 엄청 잘생기거나 키가 큰 배우는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을 계속 끌어당기는 힘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귀신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계속 사람들을 홀리는 배우요.”

그 말을 하며 웃던 윤재찬의 눈빛에는 이상하리만큼 단단한 확신이 어려 있었다. 긴 시간을 돌아 이제야 자신의 길 위에 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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