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tvN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하 ‘건물주’)이 화제를 모았던 점 중 하나는 하정우의 19년 만의 채널 드라마 복귀작이란 점이다. 주로 영화계에서 맹활약한 하정우가 긴 호흡의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하정우의 연기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나왔다. 노련한 건지 나른한 건지 모르겠는데 편안한 연기가 생경하다는 게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하정우가 연기한 기수종이 중심을 잡아주자 욕망이 들끓는 인물들의 악행이 뚜렷하게 빛이 났다.

임필성 감독은 “하정우가 분명히 핵심 장면에서는 힘 있게 몰아붙이면서 다 해줬다. 워낙 명배우고 좋은 연기를 많이 보여줘서 그런지 기대치가 높은 것 같다. 양식적인 연기보다는 자유로운 연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지점을 완벽히 표현해 줬다”며 “인간이라는 게 알 수 없지 않나. 나쁘다고 다 인상 찡그리고 있지는 않는다. 사기꾼들이 더 잘 웃는다고도 하는데, 이런 캐릭터 접근 방식이 대중적이진 않지만 장악력은 분명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아마 배우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주인공인데 응원할 수 없고, 정을 주려다가도 도덕적으로 벗어나는 행동도 하니 연기가 쉽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기수종이 댐처럼 버텼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보여진 거라 생각한다. 현장에서도 다른 배우들이 더 살아날 수 있도록 코치하는 걸 보고 정말 감사하고 멋진 배우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모두가 빛났다. 특히 사이코패스 요나를 연기한 심은경은 칼춤을 췄다. 애초에 남자 배우로 설정된 캐릭터였는데,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자며 심은경으로 바뀌었다. 심은경의 연기를 믿은 것이다.

“제가 연출한 ‘헨젤과 그레텔’로 데뷔한 배우예요. 무럭무럭 자라서 다시 만났죠. 10부에서 세윤빌딩이 불에 타고 경찰이 왔을 때 손 흔들면서 ‘저 아니에요’라고 하는 장면은 정말 짜릿했어요. 연출자로서 제 상상 밖의 훌륭한 연기가 나올 때의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그 장면이 그랬어요. 고맙죠 정말.”

심은경뿐만이 아니다. 김준한과 임수정, 정수정, 김금순, 이신기, 류아벨, 박성일과 같은 주요 배우는 물론 김남길, 현봉식, 박병은, 주지훈과 같은 특별출연 배우들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제가 인복이 있나 봐요. 저 역시 오랜만에 연출하는 거고 워낙 중요한 작품이다 보니까 이번에 배우들한테 부탁을 많이 했죠. 도전적인 작품이면서 재미가 있었는지, 정말 제가 생각한 모든 배우가 출연해 줬습니다. 제가 잘 갚아 나가야죠. 이름값 있는 배우들은 물론이고 대사 한 줄 있는 배우들도 제가 다 요청했어요. 워낙 어려운 작품이라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다행히 연기 평은 다 좋더라고요.”

‘건물주’는 블랙코미디와 스릴러가 혼합된 동시에, 악인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문법을 따른다. 극 중 기수종은 거대한 부를 얻는 대신 관계적인 면에선 철저히 고립된다. 하지만 기수종이 지은 죄에 비해 벌이 약한 편이라 약간의 찝찝함이 남기도 한다.

“엔딩이 여러 버전이 있었어요. 기수종이 모든 걸 잃는 버전도 있었고, 요나가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가는 버전도 있었어요. 결국 이 엔딩을 택하게 됐죠. 여러 환경적인 제한이 있었어요. 저도 마지막 회 보면서 ‘남의 작품’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기수종이 더 벌을 받았어야 했다는 불편함, 아쉽긴 하지만 저희로서도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한국 영화계는 오랜 위기에 놓여 있다. 투자가 멈추면서 제작도 힘을 잃었고, 매력적인 새 작품이 드물어졌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온몸으로 겪은 임필성 감독도 고심이 많다.

“조심스럽게 말해보면 대중은 정말 똑똑해졌는데, 영화인들이 그만큼 못 쫓아가는 것 같아요. 자꾸 자기 생각이 강한 흥행 공식을 따라가는 거죠. 그 전략이 너무 오래간 거 같아요. 요즘 1000만 넘는 영화들 보면 정말 힘들게 만들어진 작품이 많아요. 여기저기 거절당하다가 마지막에 된 거죠. 관객들이 다 해피엔딩만 좋아하지 않아요. 8~90년대 드라마 중에 엄청 실험적인 작품이 많아요. 그때도 20% 넘게 시청률이 나왔고요. 그 당시 시청자들이 유독 실험적인 걸 좋아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까요? 만드는 사람들이 더 반짝거리는 감성으로 새로운 걸 내놔야 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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