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면죄부’

선수들이 무슨 ‘촉법 소년’인가

심지어 프런트 징계 ‘비밀 유지 원칙’

‘눈 가리고 아웅’ 롯데

[스포츠서울 | 박연준 기자] 앞으로 마음 놓고 ‘사고’ 쳐라. 어차피 징계는 안 받으니까.

징계는 책임을 명확히 가리는 행위다.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그에 상당한 벌을 내림으로써 기강을 잡고 재발을 막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롯데가 내놓은 이번 ‘대만 원정 도박’ 자체 징계안은 이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사고 친 선수는 내버려 두고, 프런트만 철퇴를 맞았다. 황당 그 자체다.

롯데는 27일 “대표이사와 단장에게 중징계 조처를 내리고, 담당 프런트 매니저들에게도 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작 도박장에 출입해 물의를 빚은 ‘도박 4인방’ 고승민, 나승엽, 김동혁, 김세민에 대해서는 KBO가 내린 출장 정지 처분(30~50경기) 외에 구단 차원의 추가 징계는 없다고 못 박았다.

선수단 교육을 철저히 했음에도 발생한 개인의 일탈이라 했다. 그 책임은 정작 교육을 한 프런트가 짊어지는 모순이다. 징계가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아닌, 책임을 둘러싸고 흐리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도박은 선수가 했는데, 왜 벌은 엉뚱한 이들이 대신 받을까.

롯데 박준혁 단장은 “선수단 교육을 많이 했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프런트도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책임 법리의 과도한 확장이다. 성인인 프로 선수가 새벽 시간에 자발적으로 외부로 나가 저지른 행위까지 프런트가 통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이 된다면, 사실상 모든 선수를 24시간 감시하라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이어 “감정적인 징계는 배제하려고 했다. 당시 사고만 보려고 했다”고 했다. 선수의 잘못된 그릇에 감정을 얘기할 것이 어딨으며, ‘도박’ 두 글자에 ‘잘못’이 아닌 다른 것으로 판단할 게 있나.

과거 사찰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롯데다. CCTV를 달아서라도 막았어야 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수를 주체적인 성인으로 보지 않는 것인가. ‘촉법 소년’ 취급한 모양새다. 향후 선수단 관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고는 내가 쳐도 징계는 윗분들이 받는다”는 안일한 인식이 심어질까 우려스럽다.

더욱 황당한 것은 징계의 실효성조차 확인할 길 없다는 점이다. 롯데 관계자는 징계 수위를 묻는 스포츠서울의 질문에 “징계위원회 자체가 비밀 유지 원칙이라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사장과 단장이 어떤 ‘중징계’를 받았는지, 담당 매니저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8년 연속 가을야구 실패라는 아픔 속에서도 묵묵히 응원해 온 팬들이 진정 바란 것은 ‘대리 징계’라는 촌극이 아니다. 잘못을 저지른 선수들의 진정성 있는 자숙과 이를 바로잡는 구단의 서슬 퍼런 기강이다.

또 이번 비시즌 동안 외부 영입이 없었던 롯데다. ‘이 네 선수마저 빠지게 된다면, 가을야구는 정말 불가능하기에’ 이런 징계를 내린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지 않고서야, 선수 징계 ‘패스’를 택할 수 있었을까.

나쁜 선례로 남을 수밖에 없다. 행위와 책임이 분리된 조직에서 건강한 규율이 바로 설 리 만무하다. 사고를 쳐도 혼나지 않는다. ‘마음 놓고 사고 쳐라’라는 메시지 말고 무엇을 전할 수 있나. 롯데의 ‘선수 보호’가 오히려 선수들의 ‘책임감’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duswns06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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