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디즈니+ 오리지널 ‘운명전쟁49’는 애초에 안고 출발한 리스크가 컸다. 이미 촬영을 모두 마친 상황에서 불거진 MC 박나래의 갑질 논란이라는 폭탄을 떠안아야 했고, 소재 자체도 특정 종교에서는 ‘우상 숭배’라며 거부감을 표하는 무속이다. 무속인 간의 서바이벌이라는 파격에 위험이 뒤따랐다.
결국 우려했던 문제가 터졌다. 제작진이 업무 중 순직한 고(故) 김철홍 소방교를 미션의 문제로 제시했고, 다수의 출연자가 망자의 사망 원인을 맞혔다. 최종 승리를 따낸 매화도령이 망자의 명복을 빌며 예우를 다했음에도 유족의 마음에는 상처가 남았다. 보안이 생명인 론칭 프로그램 특성상 유족에게 기획 의도를 상세히 설명하기 어려웠을 제작진의 고충도 이해는 되지만, 예상치 못한 방송에 불편함을 느꼈을 유족의 심정 역시 십분 공감된다. 파격을 시도한 제작진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비록 시작점엔 삐걱거리는 논란이 있었으나, 뚜껑을 연 ‘운명전쟁49’는 참신하고 깊이가 있다. 출연자들은 “할머니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근거를 내세우면서도, 도저히 맞히기 어려운 것들을 소름 돋게 짚어냈다. 10명 중 100억대 자산가 5명을 골라내고, 남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아픔을 툭툭 꺼내놓았다.
묘한 카타르시스가 발생했다. 누군가 내 깊은 아픔을 알아줬을 때 밀려오는 감동과 눈물, 감사가 터져 나왔다. 겉으로는 문제를 푸는 서바이벌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상은 겹겹이 쌓인 인생의 응어리를 치유하는 과정에 가깝다. 당사자의 한을 풀어주는 출연자들의 짙은 인간미는 위로마저 안겼다.
비과학의 정점에 있는 서바이벌이라지만, 그 안에는 결국 ‘인생’이 담겨 있다. 단명할 운명을 피하려 무속의 길을 택한 이들, 친구들과 뛰어놀 10대에 기도를 올리는 애기보살, 상문살 탓에 주변인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30대 무당 등 사연 없는 출연자가 없다. 가늠조차 힘든 고통을 담담히 이겨내는 이들의 얼굴을 보다 보면, 현실의 벽에 부딪힌 이들마저도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게 된다.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제작진의 미장센도 압권이다. 세트 사이로 물이 흐르고, 거대한 무대 뒤에서 출연자들이 등장하는 연출은 한 편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정답을 맞히면 달이 뜨는 디테일도 훌륭하다. 패널들은 시청자의 눈과 귀가 돼 현장의 기이한 에너지를 안방에 생생하게 전달했다.

박나래의 비중 역시 영리하게 축소됐다. 중심 진행을 전현무에게 일임하고, 박나래는 “소름 돋는다”는 식의 리액션에 집중했다. 패널이 5명뿐인 상황에서 물리적인 통편집은 불가능했겠지만, 시청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세심하게 편집해 낸 제작진의 노고가 엿보인다.
이제 단 3회만이 남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진정으로 영검한 자들만이 살아남고 있다. 첫 시즌이라 보완할 점도 눈에 띄지만, 오랫동안 장수할 서바이벌 IP가 탄생했다는 사실만큼은 거부할 수 없다. 아무리 비과학적이라 한들, 인간 본연의 호기심을 이토록 강력하게 자극한다는 것 역시 막을 수 없는 진실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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