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8년 만에 올림픽 정상을 탈환하는 데 방점을 찍은 ‘람보르길리’ 김길리(성남시청)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보다 마음의 빚을 안고 뛰었다.
김길리는 지난해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달리다가 결승선을 앞두고 중국 궁리와 충돌해 넘어졌다. 이 여파로 한국은 4위에 그쳤다.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하얼빈의 악몽’을 반드시 깨뜨리겠다는 각오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이번엔 불운이 따랐다. 지난 10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서 앞서 달린 미국의 컬린 스토더드가 넘어지며 김길리를 덮쳤다. 갈비뼈에 경미한 부상을 입은 그는 아픔보다 미안한 마음을 먼저 품었다. 하얼빈의 악몽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좌절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9일 만에 같은 장소에서 기쁨의 눈물로 바꿔놨다. 결승선 2바퀴를 남겨두고 마지막 주자로 나선 그는 직선 주로에서 장기인 인코스 공략으로 선두를 달린 이탈리아의 ‘리빙 레전드’ 아리안나 폰타나를 따돌렸다. 그대로 끝까지 선두를 지키면서 한국의 우승을 견인했다.


‘제2 최민정’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은 김길리는 이번 대회가 커리어 첫 올림픽이다. 중압감이 다른 올림픽 무대에서 시행착오가 따를 수밖에 없다. 지난 16일 여자 1000m 결승에서 장기인 인코스 추월로 막판 선두로 나섰지만 노련한 산드라 펠제부르(네덜란드) 코트니 사로(캐나다)의 견제와 주행에 밀려 아쉽게 동메달을 목에 건 적이 있다.
하지만 메달 ‘혈’을 뚫으며 자신감을 품은 김길리는 여자 3000m 계주에서 ‘무결점’ 인코스 추월로 금빛 레이스를 펼쳤다. 모든 마음의 짐을 털어내면서 차세대 여자 쇼트트랙의 ‘기둥’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우승 직후 특유의 환한 미소를 보이며 “네 발로 탄 것 같다. 양손을 다 짚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든 내 자리를 지키려고 했다”면서 “폰타나는 워낙 코스가 좋은 선수여서 ‘틈이 없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길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결승선 통과 순간) 너무 기뻐서 언니들한테 달려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 최민정, 심석희 등 선배를 동경하며 스케이트화를 신은 김길리는 마침내 꿈의 올림픽 무대에서 이들과 금메달을 합작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멀티 메달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21일 열리는 여자 1500m에서 세 번째 메달에 도전한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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