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차가운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액션 장인 조인성과 멜로의 지평을 넓힌 박정민이 충돌한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는 첩보 액션의 쾌감 위에 거칠고 불완전한 사랑, 그리고 뜻밖의 브로맨스를 촘촘히 엮어낸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휴민트’는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 분)로부터 내부 정보를 얻는 국정원 소속 조과장(조인성 분)에서 시작된다. 한 차례 자신의 정보원을 잃으며 트라우마를 겪은 조과장은 채선화에게 유독 애틋한 감정을 품는다.

그러던 중 채선화의 전 연인인 북한 보위부 소속 박건(박정민 분)이 등장하며 판은 급격히 흔들린다. 박건은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 분)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이곳에 발을 들이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힌 인물들은 점점 같은 공간에서 충돌하게 된다.

‘휴민트’는 시작부터 류승완 감독의 장기를 명확히 드러낸다. 좁은 공간 내에서도 과감한 액션을 보여주며 초반부터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조인성은 조과장을 통해 자신의 피지컬을 최대치로 활용한 액션을 보여준다. 긴 팔다리를 이용한 타격감 있는 동작, 공간을 넓게 쓰는 몸놀림이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진다.

조인성의 액션은 단순히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않는다. 계산된 감각과 본능적인 판단력이 날카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이는 국정원 소속인 조과장의 직업과 성격을 동시에 설득시킨다.

조과장의 시원한 액션에 익숙해질 즈음, 박건의 등장과 함께 또 다른 긴장감을 유발한다. 박정민 표 박건은 바싹 마른 얼굴, 예민함, 한 치의 여유도 없어 보이는 눈빛으로 인물의 시간을 단번에 짐작하게 만든다. 신경질적이고 거친 말투, 주변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에선 박정민 특유의 ‘짜증 연기’가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휴민트’에선 박정민 표 멜로 연기가 포인트다. 박건이 채선화를 향해 품고 있는 감정은 과거부터 이어져 갈무리 되지 않은 전 연인의 애틋함이다. 그런 박건의 사랑은 투박하고 거칠며, 짜증과 집착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박건의 사랑을 더 진실하게 만든다. 매끄럽고 유려한 멜로가 아닌 상처투성이의 사랑은 순애보처럼 다가오며 묘한 설렘을 남긴다. 이는 ‘멜로도 되는 배우’라는 가능성을 넘어 박정민만의 멜로 문법의 새로운 페이지를 연다.

영화의 중반을 지나며 액션과 멜로, 그 다음엔 조과장과 박건이 만들어내는 브로맨스가 등장한다. 남과 북이라는 넘을 수 없는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총구를 겨누는 순간만큼은 이념도, 국적도 사라진다. 러시아 마피아들과 맞서 등을 맞댄 채 싸우는 장면은 한 편의 버디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박해준이 연기한 황치성은 이야기의 긴장을 단단히 받쳐주는 축이다. 권력을 쥔 인물 특유의 냉소와 비열함을 연기한다. 신세경 표 채선화는 정보원이자 누군가의 연인이었던 인물로서 위기의 순간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류승완 감독의 세계관을 아는 관객이라면 반가운 지점들도 눈에 띈다. 전작 ‘베를린’ 속 표종성(하정우 분)의 뜻밖의 근황을 비롯해 정보원을 대하는 조과장의 태도에는 감독 특유의 ‘인류애적 시선’이 담겨 있다. 정보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은 끝내 도구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신념이 조용한 울림을 준다.

‘휴민트’는 조인성의 액션이 확실한 중심을 잡고 박정민이 감정의 결을 넓히며 완성되는 영화다. 익숙한 장르 안에서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고, 액션과 멜로, 브로맨스가 서로를 잠식하지 않고 공존한다. 과연 설 연휴 극장가에서 ‘휴민트’가 어떤 성적을 거둘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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