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나이가 들면서 유해졌어요. 모서리도 많이 깎이고, 날카로운 침도 뽑히고요. 지금은 그냥 동네 할아버지 같은 느낌입니다.”

‘가요계 호랑이’ 임재범이 데뷔 40주년을 맞이했다. ‘비상’ ‘고해’ ‘너를 위해’ 등 숱한 히트곡을 배출하고 예순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임재범은 한사코 ‘레전드’라는 수식어를 사양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간담회를 연 임재범은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흐를지 몰랐다”며 “어릴 때는 제가 노래를 건방지게 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음악도 노래도 하면 할수록 책임감이 깊어져요. 영혼을 갈아 넣어서 불러야 한다고 느껴요. 그래야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돼요. 더 조심스럽고 신중해집니다. ‘레전드’라는 수식어는 아직 전 아니에요. 패티김, 윤복희, 조용필 선배님이 레전드시죠.”

임재범에게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다. 여러 후배들이 그의 성대모사에 도전하지만 임재범 특유의 아우라는 모방할 수 없다.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는 에너지. 마이크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공기마저 흐름을 멈춰버린다.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다.

“제가 호랑이처럼 생긴 얼굴은 아니지 않나요? 하하. 자세히 보면 곰도 있어요. 요즘에는 어떤 인형을 닮았다고도 하시더라고요. 록 음악을 할 때는 눈빛이 변하긴 했어요. 록은 제 고향이기 때문이죠. 사실 예전에는 무대와 현실을 구분 못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무대에서 내려오면 바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죠. ‘나는 아무 것도 안했다. 여태 노래 부른 건 다른 사람이다. 나는 그저 내 딸의 아빠, 분리수거 잘하는 아빠일 뿐이다’라고요.”

말투도, 눈빛도 이전보다 부드러워진 인상이다. 임재범과 함께 JTBC ‘싱어게인4’에 출연하는 작사가 김이나도 “선배님은 점점 따스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다. 정규 8집 선공개곡 ‘인사’ 역시 그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팬들과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마음을 담았다. 임재범은 “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가사에 다 옮겼다”며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저와 함께해주고, 도와주신 팬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가사를 보다가 제 딸내미도 떠올라서 울컥하더라고요. 이 녀석한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에요. 엄마 떠나고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거예요. 청소년기가 되면 남자친구 얘기나 고민을 엄마한테 많이 한다던데, 아빠로서 많이 미안했죠. 아빠 힘들게 안하려고 내색 않고 자기 혼자 삭히는 모습도 참 미안했고요.”

40주년을 맞아 임재범은 ‘인사’를 필두로 ‘니가 오는 시간’ 등 8집에 실릴 신곡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날짜가 아직 미정인 이유는 완벽한 음악까지 얼마나 걸릴지 임재범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월 29일부터는 전국투어 콘서트 ‘나는 임재범이다’를 개최한다.

“과거의 날카로움은 사실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차라리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고,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으면 됐을 텐데, ‘이거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치고 받았어요. 제 모습이 원망스럽더라고요. 이제는 자식을 키우면서 많이 참게 돼요. 한두 번 더 지켜보고, 되돌아보게 돼요. 모난 부분을 스스로 조금씩 깎아가게 됩니다. 언젠가 저도 죽겠지만 ‘그래, 이 정도면 잘 다듬고 가는구나’ 하고 후회 없도록 잘 깎아가겠습니다.” rok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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