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니폼니시 축구엔 감동과 신뢰가 있었다.”

발레리 니폼시 감독이 K리그를 떠난 지 16년. 그러나 그의 축구는 다음 시즌 K리그 클래식을 통해 한 번 더 나타날 전망이다. 니폼니시 감독 제자들과 라이벌 김호 감독이 회상한 ‘니포 축구’는 어떤 것이었을까. 전술과 훈련, 선수 관리 등에서 선진적이고 참신했다는 게 공통된 견해였다. 그들이 전하는 ‘니포 축구’를 곱씹어보며 다음 시즌 K리그 클래식 판도를 떠올리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하재훈(전 부천 감독)=니폼니시 감독 밑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아, 축구를 이렇게 하는거구나’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최고의 지도법은 감동을 전해주는 것인데 니폼니시 감독에겐 그런 감동과 신뢰가 있었다. 전술적으로 보면, 당시엔 스위퍼(스리백) 시스템에 측면 윙이 유행했다. 윙은 당연히 라인을 직선적으로 타고 올라갔다. 하지만 니폼니시 감독은 윙들에게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쳤다. “직선 움직임은 크로스밖에 못 하지만, 대각선으로 움직이면 상대 골키퍼와의 일대일 골 찬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지금 그런 공격을 많은 팀들이 ‘컷백’이라는 개념으로 하지 않나. 니폼니시 감독은 훈련을 길게 하지 않았다. 그 때까지 한국에선 훈련양이 중요했다. 2~3시간 하고 그랬다. 니폼니시 감독 훈련은 1시간 30분 이상을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연습 마치면 2~3시간 훈련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조성환(제주 감독)=당시엔 축구에 대한 재미를 많이 느꼈던 시기였다. 특히 경기 운영이나 미드필드 플레이가 좋았기 때문에 경기가 후반으로 갈수록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가졌다. 선수 관리가 신선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은 숙소 생활을 많이 하는데 니폼니시 감독은 어린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기혼자는 물론 미혼인 선수도 숙소를 떠나 자율적으로 자기 관리를 하도록 했다. 물론 한국적 현실에 맞지 않는 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김기동 현 올림픽대표팀 코치처럼 필드플레이어가 40살 가까이 현역 생활을 한 배경엔 니폼니시 감독의 자율 축구를 잘 이해했기 때문으로도 보고 있다. ‘자율을 주지만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선수 관리 철학을 1990년대에 니폼니시 감독이 심었던 것 같다.

◇최윤겸(전 대전 감독)=많은 이들이 니폼니시 감독을 떠올리면 4-4-2 포메이션, 패스 축구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그런 전술은 다른 지도자들도 할 수 있다. 니폼니시 감독이 부천 사령탑일 때 트레이너 및 코치 생활을 하던 내가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선수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면이었다. 이를테면, 훈련을 하는데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으면 선수들이 해를 등지고 연습하도록 운동장 진영을 조정하는 것들이 그렇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도 니폼니시 감독은 선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판단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아도 선수 탓을 하지 않았다. 이기면 선수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니폼니시 감독의 그런 신사다운 면모를 어느 순간 알게 됐고, 그 때부턴 감독을 위해 헌신하는 팀으로 거듭났다.

◇김호(전 수원 감독)=내가 이끌던 수원과 니폼니시 감독이 지휘하던 부천이 붙으면 어떤 경기보다도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니폼니시 감독이 내게 자주 지다보니 여러 어려움도 느꼈던 것 같다(웃음). 니폼니시 감독은 일단 축구 철학이 뚜렷하고 자기 주관이 확고했다. 그 중에 기억나는 것으론 미드필드 강화와 템포 조절 등을 들 수 있다. 부천엔 윤정환을 중심으로 이을용 김기동 윤정춘 등이 있었는데 고종수와 바데아 윤성효 등 수원 미드필더들과의 흥미진진한 중원 싸움이 아직도 생각난다. 또 니폼니시 감독은 선진국에서 하던 리듬과 템포를 잘 이해한 지도자였다. 당시 K리그를 보면 수비진과 미드필드, 공격진 할 것 없이 똑같은 페이스로 경기 운영을 하는, 리듬 없는 축구가 많았다. 반면 니폼니시 감독은 템포 축구를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당시 구단 중 가장 완벽했던 것 같다.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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