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 일상이 된 시대, 제작현장에서 벌어지는 시민 대상 ‘갑질’과 ‘민폐’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엔 납골당에서 민폐촬영이 발생했다.
지난 2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납골당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촬영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오늘 할머니 발인하고 납골당에 모시러 갔는데 드라마인지 뭔지 촬영하고 있었다. 그냥 ‘신기하다’ 하고 보고 있었는데 스태프 중 한 명이 나한테 오더니 ‘정말 죄송한데 촬영 중이라 조금만 조용히 해 줄 수 없냐’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상한게 난 애초에 말도 안 하고 있었고 가족들이랑 친지분들도 큰 목소리로 대화하지 않고 있었다”며 “그래서 난 원래 조용한 편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른 가족들한테도 전달을 해달라고 하네. 그래서 ‘제가요?’ 하고 대화 끝냈다”고 전했다.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유가족인 본인과 가족이 크게 떠들지 않았는데,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이다.
납골당 측은 해당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촬영팀이 어떤 작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용히 조문 중인 유가족에게 ‘촬영을 방해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은 무례라는 비판이다. “납골당에서 누군가 통곡하면, 울지도 말라고 할 것 같다”는 당혹감을 보이기도 했다.
◇ 반복되는 촬영현장 ‘민폐’와 ‘갑질’…공공장소는 제작진의 전유물?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시내 번화가, 서울 성곽길, 한강변, 천변 등지에서는 드라마 촬영으로 보행자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 늦은밤, 새벽촬영이지만 아닌 경우도 꽤 있기에 시민들은 “드라마 촬영 때문에 길이 막혀 돌아가거나 대기해야 할 때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지난해에는 KBS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제작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병산서원의 기둥에 못을 박아 비판을 받았고,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장에서 촬영하며 관광객을 막아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그 외에도 시민의 참을성을 시험하는 제작 현장은 있어왔다. 2023년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제작진은 병원 앞에서 응급환자 진입을 막아 비난을 받았다. 한 시민은 “고위험 산모와 병원에 들어가려는데 조연출이 촬영 중이라며 막았다”고 주장했다.
‘무인도의 디바’ 촬영팀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소음으로 주민에게 항의를 받았고, 한 주민은 참다못해 촬영 현장에 벽돌을 던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같은 작품은 제주도에서 무허가 촬영 후 돌무더기를 그대로 방치해 자연훼손 지적까지 받았다.
이처럼 실질적 시민 통제는 허용되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시민들은 “촬영 중”이라는 말 한마디에 통행과 기본권을 제한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촬영도 공공장소를 사용하는 만큼 사전 고지, 시민 통제 범위 명확화, 현장 매너 가이드라인 강화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촬영이 예술을 위한 일이라 해도, 시민 일상의 침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드라마 촬영의 책임자도 아닌 말단 스태프의 “죄송하지만 조용히 해주세요. 촬영 끝날때까지 기다려주세요”가 면죄부가 되는 현장이 반복돼선 안 된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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