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수비는 자신있어요. 메이저리그(ML)가 목표에요.”
2018년 봄이었다. 수비하는 ‘그림’이 예뻐서 훈련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선수 한 명에게 다가갔다.
무엇보다 소위 ‘글러브질’이 좋아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물었더니 “고등학교 때부터 수비 훈련에 시간을 많이 들였다. 내가 가진 강점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그게 수비라고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타구 판단, 스타트 방법, 포구 후 송구나 피봇플레이 등 수비 기본기에 관한 대화가 꽤 장시간 이어졌다.

그는 “빳빳한 글러브를 좋아한다. 일부러 길을 들인다거나, 볼을 정확히 잡으려고 글러브를 오므리지 않는 편”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바운드가 나쁘거나, 타구 회전이 이상하게 걸려도 편안하게 처리하는 이유였다. 볼을 잡는 게 아니라 ‘세워두는 것’이라는 내야수의 기본을 매우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눈치였다.
‘국민유격수’로 불린 삼성 박진만 감독이 아직 코치이던 시절, 수비하는 ‘그림이 예쁜 내야수’ 몇 명에 관해 물었다. 박 감독은 “김혜성이 가장 눈에 띈다”고 했다. “(이)학주도 좋은 것들을 갖고 있고 (오)지환이도 리그 정상급으로 올라섰지만, 타구를 대하는 자세가 좋다”며 특유의 눈웃음을 지었다. 그는 “송구동작 때 마무리만 정확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면 꽤 좋은 내야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하성이라는 특출난 유격수와 같은 팀인 탓에 여러 포지션을 두루 소화해야 했지만, ‘수비의 달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재다능해서 ‘확실한 내 땅’을 갖지 못한 인상. 내외야를 가리지 않고 그라운드를 활보하던 그는 “ML 진출이라는 꿈을 잊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게 팀과 나를 위해 꼭 달성해야 할 목표”라고 말했다.
그 시작점에 다가섰다. 키움과 8년 동행에 쉼표를 찍은 김혜성(26)이 14일 출국한다. 김혜성의 에이전시인 CAA는 13일 “김혜성이 14일 오후 시애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고 밝혔다. 내달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멀백랜치에서 시작하는 LA다저스 스프링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태평양을 떠난다.

2017년 신인2차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그는 8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04의 기록을 남겼다. 1043안타 591득점했고 도루도 211개를 기록했다. 통산 출루율은 0.364로 타율보다 6푼이 높다. 콘택트, 주루, 수비로 영웅군단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시즌 후 ML 진출에 도전한 그는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LA다저스와 3+2년 최대 2200만달러(약 324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여러 구단이 영입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박찬호 선배님부터 류현진 선배님이 다저스에서 뛰는 모습을 많이 봤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이기도 하고, 오타니 쇼헤이가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다저스를 선택했다.

실제로 김혜성이 다저스와 계약한 소식이 알려지자 오타니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환영합니다. 친구”라고 한글로 환영 메시지를 띄우는 등 살갑게 맞이했다.
김혜성은 “포스팅 신청 전 CAA가 마련한 훈련장을 썼는데, 오타니가 훈련 중이더라. ‘이틀 뒤 포스팅을 신청한다’고 말했더니 ‘응원한다’고 말해주더라”며 웃었다. 세계적인 슈퍼스타와 팀메이트로, 히어로즈에서는 맛보지 못한 우승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된다.
그 첫 번째 여정이 출국인 셈이다.

다저스 스프링캠프는 2월 중순 시작한다. 20일을 전후해 시범경기를 시작하므로, 김혜성에게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에 불과하다. 충분히 몸을 만들고, ML급 선수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시범경기를 시작하면, 절친인 샌프란시스코 이정후와 조우도 가능하다. 이정후는 13일 출국하므로, 애리조나에서 먼저 만나 이런저런 조언을 얻을 수도 있다. 히어로즈도 애리조나에 스프링캠프를 차리므로, 김혜성이 함께 훈련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여러모로 살떨리는 첫 도전을 앞둔 김혜성 앞에 동료들이 힘을 보탤 여지가 남아있다.

‘수비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꾼 김혜성이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혜성의 도전을 응원한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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