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괜찮아\'
‘괜찮아’경기를 마친 한국 김연경이 선수들을 위로하고 있다. 2021.8.8 연합뉴스

[스포츠서울|배우근기자]수영을 좋아한다. 재능도 있다. 그러나 대회만 나가면 4등이다. 영화 ‘4등(2016년)’의 유소년 수영선수 준호의 이야기다. 엄마는 새 코치에게 아이를 맡긴다. 새 코치는 1등을 장담한다. 방법은 폭력이다. 매를 들어 아이를 때린다. 준호의 엄마는 코치의 매질을 방관한다. 멍투성이 열두살 준호의 몸. 성적은 나온다. 2위 입상. 그런데 물속에서 자유를 느끼던 준호는 말한다. “4등이 뭐 나쁜건가요?” 해맑은 얼굴이다.

한때 우리도 1등만 기억하는 사회였다. 스포츠 뿐 아니라 사회 전분야가 1등을 향해 달렸다. 정상에 오른 이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기억되지만 그 아래 등수의 수 많은 인생은 고개를 떨궜다. 박수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자배구가 도쿄올림픽에서 4위로 경기를 마쳤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도전에 박수치며 함께 호흡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매 경기 모든 걸 쏟아내는 모습에 국민모두 자부심을 느꼈다”라고 발표했다.

[올림픽] 아름다운 패배
아름다운 패배. 유도 남자 -100 kg급 결승 경기에서 한국 조구함이 일본 에런 울프를 상대로 패한 뒤 울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2021.7.29 연합뉴스

올림픽 정신, 더 나아가 스포츠 정신은 메달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젠 메달의 의미도 달라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금메달은 우리나라의 국격과 위상을 높인다고 생각했다. 시대에 따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강한 상대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메달 이상의 감동을 선물한다. 육상에서 넘어진 선수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모습, 패자가 승자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은 메달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올림픽] 우상혁, \'높이 뛰었다\'
남자 높이뛰기에서 2m 35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경기 종료 후 태극기를 펼치며 기뻐하고 있다. 2021.8.1 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에선 여자배구를 비롯해 여러 종목에서 4위가 나왔다. 금은동 다음의 4위. 메달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래 기억할 4위의 장면들이 있다. 스마일맨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은 높이뛰기 결선에서 2m 35를 넘어 4위를 차지했다.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지만, 단 2cm차이로 목에 메달을 걸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별명처럼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매순간 즐겁게 도전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다시 도전하면 즐거움이 찾아올 것이다”라고 방싯했다. 그에게 4위는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이다. 그의 비상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이 그 감정을 공유했다.

수영 다이빙의 우하람(23·국민체육진흥공단)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시상대에 오르진 못했지만 한국다이빙 역사상 최고순위를 새로 썼다.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선 우리나라 선수끼리 대결했다. 김소영(29·인천국제공항),공희용(25·전북은행)이 이소희,신승찬(이상 27·인천국제공항)을 꺾고 3위를 차지했다. 경기후 한솥밥을 먹던 4명의 선수는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패자는 승자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올림픽] ‘긴 레이스를 함께 해줘서 고마워’
‘긴 레이스를 함께 해줘서 고마워’ 정진화(오른쪽)와 전웅태가 7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레이저런 경기 결승선을 통과한 후 포옹하고 있다. 2021.8.7 연합뉴스

근대5종에서 정진화(32·LH)는 피니시 라인까지 3위 전웅태(26·광주광역시청)의 등을 보고 달려야 했다. 한발만 더. 그러나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정진화는 “다른 선수도 아닌 웅태의 등을 보면서 결승선을 통과해서 마음이 좀 편했다”고 말했다. 순위가 결정된 뒤, 정진화는 전웅태를 힘껏 안아주며 축하했다.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선수는 매일 15시간 이상 한몸처럼 훈련한 사이였다.

4위라고 해도 다 같은 4위는 아니다. 6개팀이 출전한 야구종목에서 한국은 4위를 차지했다. 야구는 국내최고 인기종목이다. 이번 올림픽에선 금메달 2연패를 노렸다. 그러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강백호는 더그아웃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었다. 졸전을 거듭한 대표팀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올림픽] 한국 야구, 일본에 2대5 패배
일본에 2대5로 진 한국 야구대표팀이 아쉬워하고 있다. 2021.8.4 연합뉴스

중계하던 박찬호가 일침을 가했다. “강백호의 모습이 잠깐 보였는데, 지더라도 우리가 보여줘서는 안 되는 모습이다. 계속해서 미친 듯이 파이팅을 해야 한다. 끝까지 가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야구대표팀은 의미있는 4위가 아닌 부끄러운 4위로 올림픽 출전을 마쳤다. 4위도 4위 나름이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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