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시작됐던 2020시즌이 막을 올린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번 주 그라운드에는 반가운 만남과 아쉬운 이별이 함께했는데요. 시대를 뛰어넘은 대투수들의 진한 우정부터 보란 듯이 날아오른 이적생까지. 웃고 울었던 지난 한 주간 그라운드의 뒷얘기를 풀어봅니다.<야구팀>
이흥련
SK 이흥련. 인천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등판 전날 온다고 부담스러워 하더니…

‘대투수’ KIA 양현종과 KT 이강철 감독은 단순한 사제지간 이상 돈독한 정을 쌓은 관계죠. 양현종은 KT와 경기를 할 때마다 이 감독을 찾아 인사를 합니다. 이 감독이 다른 팀 코치로 있을 때에도 했던 일이라 둘의 조우는 어느새 취재진의 집중 취재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달 27일 수원 맞대결에서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 감독은 취재진 브리핑 도중 양현종이 뒤에서 걸어온다는 얘기를 듣고는 “꼭 등판 전날에 오느냐”며 입을 삐죽였어요. 안그래도 껄끄러운 상대인데, 등판 전날 만나면 온정(情)을 배풀어 달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느낄 수도 있다는 농담이 따라 붙었죠. 그래도 둘은 정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 한 가지. 양현종은 지난해 초보 사령탑으로 개막 5연패 늪에 빠져 신음하던 이 감독을 찾았는데요. KT는 거짓말처럼 KIA를 제압하고 연패에서 벗어났답니다. 올해 결과는 어땠냐고요? KT가 이날부터 내리 2승을 따내 분위기 반등에 성공했어요. 이쯤되면 KIA와 맞붙는 날에는 이 감독이 오히려 양현종의 방문을 기다려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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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샘슨. 제공 | 롯데

◇샘슨, 눈물의 사부곡

롯데 외국인 투수 아드리안 샘슨은 아버지의 병세가 깊어져 개막 직전 미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결국 부친상을 치르게 됐는데요. 구단에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주겠다”고 했지만, 샘슨이 오히려 즉시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을 떠나보낸 뒤 홀로 보낸 2주의 자가격리 기간이 유독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지난달 28일 지각 데뷔전을 치르며 본격 시즌을 출발한 후에도 ‘아버지’라는 단어는 샘슨을 울게 했습니다. 이틀 후 잠실 두산전을 앞둔 그는 “아버지에 관해 미국에서도 기자들과 얘기를 많이 했다. 이런 류는 참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며 추억을 풀어놓던 도중 결국 얼굴을 감싸쥐었습니다. 취재진, 구단 관계자, 통역 모두 한참 눈물을 흘리던 샘슨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May you rest in peace, Mr. Sampson.

[포토] KIA 윌리엄스 감독, 1회부터 치열해...
KIA 타이거즈 윌리엄스 감독.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보냈는데…그렇게 잘하면 어떻게 해?

두산과 SK가 긴급 2대2 트레이드를 진행했는데요, 안방 마님 이재원의 부재에 시달리는 SK가 불펜 부진으로 고민이 깊었던 두산에 투수 이승진을 내주고, 포수 이흥련을 데려왔습니다. 지금까진 SK의 얼굴에서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어요. 지난달 30일 인천 한화전에 선발 출전한 이흥련이 첫 출전 경기서부터 홈런포를 터트렸거든요. 다음날 롯데전을 앞둔 김태형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가자마자 3안타를 치면 어떻게 해? 안타 몇 개 치고, 리드 조금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웃으며 질책 아닌 질책을 했답니다. 그러면서 “가서 잘하면 좋지 뭐”라는 따뜻한 칭찬도 덧붙였어요. 전 동료 김인태도 “가서 잘하면 좋은데 두산이랑 할 땐…”이라며 귀여운 응원을 보탰답니다. 이흥련도 이 응원을 들었던 걸까요? 이튿날 경기에서도 역전 홈런포를 치며 ‘복덩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포토]4회말 무너지는 KIA 선발 양현종
KIA 양현종. 수원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KIA 맷 윌리엄스 감독이 엘·롯·기를 습득했습니다

KIA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윌리엄스 감독은 매순간이 배움의 연속입니다. 지난주 KT와 경기를 앞두고 만난 윌리엄스 감독은 취재진에게 엘·롯·기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국구 인기 구단인 LG, 롯데, KIA를 한 데 묶어서 부르는 엘·롯·기는 비슷한 시기 암흑기를 겪은 세 팀의 동병상련 처지를 의미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는데요. 이를 전해들은 윌리엄스 감독은 “우리팀이 순위가 앞서면 기·엘·롯으로 부르기도 하는건가”라고 반문해 웃음을 안겼습니다. 옆에 있던 KIA 관계자가 “그 중 최근 10년 동안 우승한 팀은 KIA가 유일하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귀띔하자 윌리엄스 감독은 “그럼 기를 맨앞으로 넣어달라”고 제안해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야구팀 ssbb@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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