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호
2016년 롯데의 새 주장을 맡게된 포수 강민호.(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2004년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드라마 ‘프라이드’에서 주인공 하루(기무라 다쿠야)가 경기시작 직전 유니폼 가슴에 새겨진 C자를 꼭 쥐고 눈을 감는, 일종의 의식을 치렀다. 관중들도 이 동작을 따라한다. 아이스하키에는 C와 A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 선수가 반드시 한 명씩 존재한다.

2015년 KBO리그에서도 C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 선수들이 각 팀에 한 명씩 보였다. C는 팀의 주장을 뜻하는 ‘캡틴’(Captain)의 이니셜이다. 에이스나 4번타자가 아닌 주장만이 이니셜 C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의미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라커룸의 감독’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과 이에 따른 책임을 요구받는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2014년 KIA 주장으로 선임돼 올해까지 연임에 성공한 이범호(34)는 “주장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어떤 일이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선후배들을 잘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후배들에게 창피 당하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팀 성적이 나쁘면 주장을 잘못 만나 선수들이 고생한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감독 성향에 따라 최선참이 완장을 차기도 하지만, 대부분 라커룸 분위기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선수들이 캡틴이 된다. 그라운드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감독이 책임질 수 있지만, 이 외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주장이 책임져야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보스턴에서 ‘영원한 캡틴’으로 불린 제이슨 배리텍은 “내 왼쪽 가슴에 새겨진 C는 캡틴의 이니셜이기도 하지만 소통(Communication)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 야구가 과거에 비해 훨씬 세분화되고 세밀해졌기 때문에 감독-코치-선수-프런트간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한화 김재현 코치는 과거 SK 주장이던 시절, 선수단이 피로를 호소하면 감독실 문을 두드렸다. 김성근 감독과 독대해 “오늘 하루 훈련을 쉬어 주십시오”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시즌 중에도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 감독이 주장의 요청에 이유도 묻지 않고 “알았다”며 당일 경기전 훈련을 취소했다. 감독과 주장 사이의 신뢰가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프런트와 선수간 갈등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는 것도 주장의 몫이다.

선수단을 하나로 규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품위유지비 개념의 판공비도 받는다. 구단별로 차이가 있지만 연간 300만~500만 원 정도가 월별로 나눠 지급된다. 고액 연봉자이거나 베테랑 선수들은 자신의 판공비에 사비를 보태 2군 선수들에게 배트 등 물품을 사주거나 회식자리를 가지며 유대감을 쌓는데 공을 들인다. 1군 주장이지만, 선수단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2군 선수들도 꾸준히 보살펴야 하는 위치다. 때문에 주장을 맡는 선수는 이기적이거나, 이른바 ‘스타병’에 걸린 선수들이 맡으면 곤란하다. 이범호의 말처럼 “이름만 주장이고 실력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그 많은 권한을 행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장이 되면 더 악착같이, 더 절실하게 야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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