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한국형 히어로는 망토를 두르지 않는다. 하늘을 날기보다 월급을 걱정하고, 세상을 구하기보다 당장 자기 삶을 버티는 데 더 익숙하다.

초능력은 거창한 사명이 아니라 뜻밖의 부담으로 주어진다. 최근 히어로물의 얼굴은 완벽한 구원자가 아니라, 허술하고 불완전하며 어딘가 짠내 나는 사람들에 가깝다.

MBC ‘오십프로’, 넷플릭스 ‘원더풀스’ ‘캐셔로’ , 디즈니+ ‘무빙2’ 등은 이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네 작품은 모두 히어로적 상상력을 품고 있지만 그 방식은 다르다.

배우 신하균, 오정세, 허정태가 출연하는 ‘오십프로’ 이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오십프로’는 초능력 대신 녹슨 능력에 주목한다. 국정원 블랙요원 출신, 북한 특수공작원 출신, 조직폭력배 2인자 출신 인물들이 얽히는 설정은 전형적인 액션물의 재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재미는 이들이 지금은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다. 한때 강했던 사람들, 그러나 현재는 몸도 상황도 마음도 예전만 못한 중년들이 다시 움직이는 이야기다.

시청자는 이들을 무적의 영웅으로 보기보다, 한때의 영광과 현재의 생계 사이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바라본다. 히어로물의 쾌감이 승리보다 재가동의 순간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이준호가 열연을 펼친 ‘캐셔로’는 주인공 강상웅은 평범한 공무원이다. 그의 능력은 손에 쥔 현금만큼 힘이 세지는 것이다. 문제는 힘을 쓰면 돈도 사라진다는 점이다. 기존 히어로물에서 초능력은 축복이나 사명처럼 주어졌지만, ‘캐셔로’에서 초능력은 생활비와 직결된 딜레마다. 세상을 구하려면 내 돈을 써야 한다. 히어로가 될수록 통장은 가벼워진다.

박은빈과 차은우가 출연하는 ‘원더풀스’ 역시 완벽한 히어로와 거리가 멀다. 1999년이라는 세기말적 배경 속에서 뜻밖의 사건으로 초능력을 얻게 된 동네 허당들이 빌런에 맞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능력’보다 ‘동네 허당’이라는 정체성이다. 능력은 있지만 서툴고, 사명감은 있지만 빈틈이 많다. 영웅의 탄생이라기보다 우연히 능력을 얻은 사람들이 좌충우돌하며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코미디 액션에 가깝다.

류승룡, 조인성, 한효주 주연의 ‘무빙2’는 한국형 히어로물의 또 다른 축이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비밀을 품은 부모 세대가 거대한 위험에 맞서는 휴먼 액션으로 사랑받았다.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초능력을 가족 서사와 결합했다는 점이다. 능력은 과시의 대상이 아니라 숨겨야 하는 상처였고, 영웅성은 세상을 구하는 사명보다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최근 히어로물은 더 이상 영웅을 높은 곳에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낮은 곳으로 끌어내린다. 회사원, 공무원, 동네 사람, 중년 남성, 부모와 자식처럼 익숙한 얼굴을 통해 초능력과 액션을 말한다. 거대한 우주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생활을 견디는 사람들이 어쩌다 더 큰 싸움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시청자가 이런 히어로에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벽한 영웅은 동경의 대상이지만, 불완전한 영웅은 공감의 대상이다. 지금의 시청자는 세상을 단번에 구하는 압도적 존재보다, 자기 앞가림도 쉽지 않은 사람이 끝내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이야기에 더 쉽게 마음을 연다. 그 모습이 현실의 자신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오십프로’ ‘원더풀스’ ‘캐셔로’ ‘무빙2’가 가리키는 방향은 그래서 같다. 영웅은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 돈이 없고,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가족을 지켜야 하고, 동네에서 허둥대는 인물들이 히어로의 얼굴이 되고 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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