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개혁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정치권의 책임과 각성

심재민 전 안양시의회 의원

민주주의는 투표로 완성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의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참정권은 국민이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이자 민주공화국의 근간이다. 따라서 선거는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국가의 핵심 책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거 관리 시스템 논란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투표권 행사에 불편을 겪거나 참정권이 침해받았다는 인식하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를 넘어 민주주의 신뢰 자체를 흔드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번 사태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영호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미 4년 전 선거 관리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연구진은 선관위와 지방자치단체, 행정안전부, 공무원 노조 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한 끝에 현행 선거 관리 체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는 사실상 방치됐다. 선관위도, 정부도, 국회도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한 결과가 오늘의 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1만 4천 개가 넘는 투표소가 운영된다. 반면 선관위 인력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상당수 선거 실무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이다. 선관위는 관리기관이고 지방공무원은 사실상 실행기관 역할을 담당하지만, 체계적인 협력 시스템은 미흡하다. 선거 때마다 현장 공무원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겨우 운영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선관위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정치권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거제도와 선거 관리 체계 전반을 개선해야 할 국회는 정쟁에 매몰됐고, 정부 역시 선거를 국가적 의제로 다루기보다 기관 간 떠넘기기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 왔다. 국민의 참정권 보장이라는 중대한 문제 앞에서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능이 이번 사태를 키운 셈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여야는 상대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선관위를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모습만 반복해 왔다.그러나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는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다. 여야 모두 선거를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제도 개선을 위한 초당적 협력에 나서야 한다.

이제는 근본적인 개혁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 선거 사무를 국가적 의제로 격상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 선관위,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단체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구성해 선거 관리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둘째, 선거 실무 인력과 보상체계를 현실화해야 한다. 선거 업무는 단순한 행정 보조가 아니라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국가 핵심 업무인 만큼 이에 걸맞은 전문 인력 확보와 보상이 필요하다.

셋째, 선관위는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조직 확대보다 정확하고 공정한 선거 관리 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하며, 무엇보다 국민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넷째, 국민의 의식 성숙도 중요하다.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부정선거를 주장하거나, 반대로 제기되는 문제를 모두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태도 역시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합리적 의심은 필요하지만, 근거 없는 불신은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참정권은 국가가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반드시 보장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이다. 선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라 책임 있는 개혁이며, 정쟁이 아니라 제도 개선이다.

국민의 한 표가 온전히 존중받는 나라, 누구도 참정권을 침해받지 않는 나라, 선거 결과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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