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K팝에서 샘플링은 양날의 검이다. 익숙함으로 진입 장벽을 단숨에 낮추지만, 자칫 원곡의 거대한 아우라에 잡아먹힐 위험도 크다. 과거에는 단순히 귀에 익은 멜로디를 앞세우는 데 그쳤다면, 지금은 다르다. 원곡의 이미지를 팀의 서사에 영리하게 편입시킨다.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메시지를 선명하게 벼리는 고도의 전략 무기로 진화했다.
디스코의 여왕 글로리아 게이너의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를 차용해 나르시시즘 서사를 완성한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위로 우아한 판타지를 펼쳐낸 레드벨벳의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이 완벽한 성공 사례다. 과거의 명곡이 K팝의 문법과 만나 트렌디한 ‘뉴트로(Newtro)’로 재탄생했다.
◇클래식에 힙합 비트 장착…블랙핑크 ‘셧 다운’의 정석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한 블랙핑크의 정규 2집 타이틀곡 ‘셧 다운(Shut Down)’은 샘플링의 교과서로 불린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를 가져왔다. 클래식 특유의 날카롭고 고풍스러운 선율 위에 묵직한 힙합 비트를 얹어 압도적인 시너지를 냈다.
성과는 명확했다.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 송 글로벌’ 6일 연속 1위는 물론, 빌보드 메인 송 차트 ‘핫 100’ 3주 진입, 영국 ‘오피셜 싱글 톱 100’ 4주 진입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전 세계인에게 각인된 클래식의 힘이 글로벌 리스너들의 귓가를 낚아챈 것이다.
◇90년대 ‘마카레나’의 귀환…르세라핌이 재해석한 ‘붐팔라’
이 영리한 바통을 르세라핌이 이어받았다. 타깃은 한층 더 직관적이고 대중적이다. 지난 22일 발매한 정규 2집 ‘퓨어플로우 파트 원(PUREFLOW’ pt.1)’의 타이틀곡 ‘붐팔라(BOOMPALA)’에 1990년대를 강타한 메가 히트 라틴 팝 ‘마카레나(Macarena)’를 심었다. 세대와 국경을 넘어 누구나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마성의 리듬이다.
절묘한 지점은 르세라핌 고유의 팀 서사와 결합한 방식이다. 늘 치열한 ‘독기’와 강렬한 퍼포먼스를 내세웠던 이들은, 이번엔 ‘마카레나’의 흥겨운 리듬을 빌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재를 즐기자”는 역설적인 여유를 던졌다.
명상 자세로 시작하는 도입부의 묵직함 뒤에,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원곡의 포인트 안무를 매끄럽게 녹여내며 내적 댄스를 유발했다.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넘어,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글로벌 팬들을 초대했다. 반응은 즉각적이다. ‘붐팔라’는 애플뮤직 ‘오늘의 톱 100: 글로벌’과 ‘월드와이드 아이튠즈 송’ 차트에 5일 연속 진입하며 순항 중이다.
◇언어 장벽 허무는 ‘문화적 DNA’…필수 흥행 공식 된 샘플링
글로벌 음악 시장 공략에 있어 ‘샘플링’은 이제 단순한 작법을 넘어선 필수 흥행 공식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음악을 활용하면 리스너들의 관심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고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는 접근성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적 DNA를 건드리며 언어의 장벽을 허문 셈이다.
블랙핑크가 증명한 흥행 가도 위에서, 르세라핌의 ‘마카레나’ 변주가 또 어떤 거대한 글로벌 슈퍼 사이클을 만들어낼지 가요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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