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번시즌 V리그 남자부 챔프전은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의 ‘기행 시리즈’였다. 블랑 감독은 부정적인 의미로 이번 챔프전의 주인공이었다. 지난 4일 2차전 5세트 막판에 나온 레오 서브의 인&아웃 판정에 불복하며 “우리가 진정한 승자다. 총재와 심판위원장이 모두 같은 굴레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항공도 부끄러운 승리임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명백하게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

심지어 블랑 감독은 8일 4차전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동률을 만든 뒤 손가락으로 3과 1을 표시, 현대캐피탈이 3승 1패로 이미 우승했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챔프전 내내 “분노”라는 단어를 달고 살기도 했다. 심지어 5차전 종료 후엔 대한항공 헤난 감독과 악수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품행 제로’, ‘금쪽이’ 정도로 표현할 만한 행보였다.

문제의 그 판정은 오심도, 오독도 아니었다. V리그 ‘로컬 룰’에 따르면 레오의 서브는 아웃이 맞다. 공이 물린 순간 사이드라인 안쪽이 보이면 V리그에선 아웃으로 간주한다. 이미 시즌 개막 전 각 팀, 감독에게 확실하게 설명하고 공지한 사안이다. 한국배구연맹도 이 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로컬 룰를 보는 시선은 엇갈릴 수 있다. 실제로 허점이 존재한다. 외국인인 블랑 감독 입장에선 황당함을 느끼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도, 블랑 감독도 시즌 내내 V리그의 로컬 룰에 따라 인&아웃 판정을 받았다. 이 기준에 따라 현대캐피탈도 이득을 본 적이 있을 게 분명하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닌데 열을 내는 블랑 감독과 선수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V리그에서는 남자부뿐 아니라 여자부 대다수 관계자가 블랑 감독의 ‘기행’에 눈살을 찌푸렸다.

V리그 로컬 룰엔 역사가 있다. 수많은 논란과 민원, 비판을 타계하기 위해 로컬 룰이 생겼다. 인&아웃 판정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부작용이 발생해 또다시 사고가 터진 셈인데, 그렇다고 지금 당장 뜯어고칠 수 없다. 시즌이 끝난 후 불만을 제기해 규정 변화를 촉구하면 모를까, 대회 도중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블랑 감독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적 명장이라 해서 억지를 부리고 리그의 규정을 무시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블랑 감독의 기행 뒤엔 결국 한국 배구를 무시하는 정서가 깔려 있다는 게 V리그 대다수 관계자의 공통된 비판적 시선이다. 블랑 감독은 지난해 컵 대회를 앞두고 보이콧을 선언해 이미 빈축을 산 바 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시각으로 V리그를 바라보며 판단하고 있다.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우리 구단이라고 해서 그 대회를 하고 싶었겠나. 결국 우리도 V리그 구성원이기 때문에 참가했다”라면서 “이번 판정 논란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블랑 감독은 한국 배구를 무시하고 있다. 그러니 저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랑 감독은 지난해 대한항공 김규민이 자신의 공에 맞은 현대캐피탈 선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한 장면을 보고 비디오판독을 신청, 네트터치 판정을 끌어낸 바 있다. 같은 장면에서 대한항공 헤난 감독은 서브 포기를 지시하며 전혀 다른 품격을 선보였다. 명장은 배구 지도력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걸 블랑 감독이 알지 모르겠다. 배구팀장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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