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월드 스타’ 오타니 쇼헤이(32·LA 다저스)는 넘을 수 없는 벽인가. 설령 넘을 수 없다면, 피해가면 그뿐이다. ‘걸러도 좋다’는 느낌으로 배합해야 하는 투구를 ‘맞아도 좋다’처럼 한 셈이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이 1회 3점을 선취하고도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단 3이닝 만에 홈런 네 방을 내주고 리드를 빼앗겼다. 4회초 1사 1루에서 김혜성이 동점 2점 홈런을 폭발하지 않았다면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볼배합이 아쉽다. KBO리그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자동 볼판정 시스템(ABS) 부작용으로 봐도 무방하다. 상대의 노림수를 읽지 못하는, 혹은 투수의 강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단순함이 화를 자초했다.
3-0으로 앞선 1회말 스즈키 세이야(32·시카고 컵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한 장면. 2볼에서 던진 체인지업 3개가 헛스윙-볼-스크라이크가 됐다. 오른손 타자인 스즈키는 고영표의 체인지업에 전혀 타이밍을 못잡는 상황. 풀카운트였더라도, 몸쪽 체인지업과 방망이가 만날 때까지 던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일전 선발로 나선 고영표는 평소와 달리 꽤 긴장한 인상. 주심의 스트라이크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만 봐도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1회 석 점을 안고 등판했으니, 잘던지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 그러나 냉정함을 잃은 투수는 실투 확률이 높아진다. 포수 역할이 도드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3회말 1사 후 두 번째로 만난 오타니. 볼 두 개가 바깥쪽에 형성됐지만, 오타니의 반응은 애매했다. 잠수함 투수이므로 ‘무조건 몸쪽’을 그리는 스탠스. 토-탭으로 대응하면서도, 스탠스가 빠른 공 투수 때보다는 한족장가량 짧았다. 속구가 시속 140㎞ 언저리이므로, 스트라이크존을 상하좌우로 절반씩 나눠 몸쪽과 높은쪽만 그리면 중간 타이밍으로도 힘을 싣기 충분하다.

3구째 몸쪽 커브를 선택한 건 그래서 매우 아쉬운 대목. 원하는 곳에 적당한 회전과 알맞은 구속으로 날아 들었다. 명백한 실투였지만, 구종과 코스 선택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배팅 타이밍에 힘있는 좌타자에게 몸쪽 느린 커브는 ‘존을 통과하는 순간 홈런’이라는 건 사실상 공식이다.
다시 만난 스즈키에게도 마찬가지. 스윙 타이밍을 홈런을 친 첫 타석 때보다 반박자 늦췄는데, 또 커브를 선택했다. 스즈키가 배팅볼 치듯 스윙할 여유를 제공한 것처럼 보였다. 역전을 허용한 직후 일본 대표팀에서 배트 스피드가 가장 빠른 요시다 마사타카(33·보스턴)에게도 커브를 던지다 백투백 홈런을 내줬다.

강속구 투수 축에 드는 조병현이 힘이 아닌 기교를, 그것도 1스트라이크에서 선택한 건 포수의 리드 실패로 보인다. 커브를 선택했더라면, 원바운드를 요구해 앞뒤 타이밍을 흔드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타석에서나 마스크를 쓸 때나 관성적으로 나서는 박동원의 습관이 한일전에서 또 나온 셈이다.
국제대회는 ‘블라인드 테스트’다. 전력분석을 철저히 했더라도, 실전에서 감지되는 공기는 ‘숫자’에 담기지 않는다. 공기 흐름을 읽고 수많은 변수를 제어하며 투수들을 끌어가는 게 포수의 기본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지난 2년 간의 ABS 도입 덕분(?)에 KBO리그는 ‘포수의 투수리드’ 개념이 사실상 사라졌다.

경기 중반까지 일본과 대등한 흐름을 이어가는 것과 별개로, 국제무대에서 ‘한국야구는 그래도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포수 육성을 고민해야 한다. 어쩄든, 투수를 가장 안정시키는 포수이고, KBO리그 투수는 세계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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