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 휴머나이제이션, 반려인 1,500만 시대의 새로운 문화 코드로 부상.

[스포츠서울ㅣ이승무 기자] 서울 강남의 한 댕유치원에서는 반려견 반장 선거를 앞두고 보호자들의 표심 경쟁이 치열하다. 유권자는 사람, 후보자는 강아지. 웃지 못할 풍경 같지만, 이 장면은 이웃집 3곳 중 1곳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려동물은 더 이상 ‘키우는 대상’이 아니다. 교육을 받고, 평가받고, 선발되는 존재가 됐다. 사람 사회의 제도와 문화가 반려동물의 세계로 그대로 옮겨오고 있다. 이른바 ‘펫 휴머나이제이션(Pet Humanization)’ 의 현실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6년 2월 발표한 「2025년 반려동물 양육현황 조사」(국가승인통계)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 비율은 29.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존 ‘4가구 중 1가구’ 수준에서 ‘3가구 중 1가구’ 수준으로 확대된 것으로, 반려동물 양육이 특정 계층의 선택을 넘어 일상적인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 조사는 전국 17개 시·도 3,000가구를 전문 조사원이 직접 방문해 면접조사하는 방식으로 처음 국가승인통계로 실시됐다는 점에서 공신력이 높다.

■ 강아지 반장 선거, 웃음이 아닌 현실

댕유치원 반장 선거의 주인공은 강아지지만, 실제 경쟁의 중심에는 보호자가 있다. 선거를 앞두고 단체 채팅방에는 반려견의 사진과 훈련 영상이 올라오고, “사회성이 좋다”, “기다려가 잘 된다”는 소개 문구가 경쟁적으로 게시된다. 반장으로 선발된 반려견은 유치원 행사 포스터와 SNS 콘텐츠의 주인공이 되며, ‘반장 출신’이라는 이력은 보호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스펙으로 통한다.

판교에 거주하는 보호자 조경일(42) 씨는 “강아지 선거라고 하지만 보호자들 사이에서는 체면이 걸린 문제”라며 “반장이 되면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펫 휴머나이제이션의 전형적인 장면으로 분석한다. 사람 사회의 평가 구조와 경쟁 심리가 반려동물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 이벤트에서 정책으로 — 지자체가 움직인다

이 같은 변화는 민간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반려동물 동반 축제, 펫 문화 페스티벌 등 반려동물 관련 행사를 경쟁적으로 기획·운영하고 있다. 반려동물 친화 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 라는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되면서, 지역 이미지와 관광·유입 인구 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했다.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이용 현황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1년 이내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이용 경험을 조사한 결과, 동물병원 이용률이 95.1% 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21년 73.0%에서 불과 4년 새 22%포인트 이상 급증한 수치로, 단순한 의료 서비스를 넘어 반려동물과의 일상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관련 지자체 관계자는 “이제 반려동물은 복지 대상이 아니라 정책 대상”이라며 “반려인 유입과 지역 이미지 제고를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분야”라고 밝혔다.

■ 대기업·제약사·금융권까지, 자본이 펫 시장으로 몰린다

트렌드 확산과 함께 산업 지형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8조 원(62억 달러) 에서 2032년 21조 원(152억 달러) 으로 약 2.5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도 2027년까지 시장 규모를 15조 원 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했다.

이미 시장의 변화는 숫자로 증명된다. 반려동물 1마리당 월평균 양육비는 12만 1천 원 으로, 반려견은 13만 5천 원, 반려묘는 9만 2천 원 수준이다. 이 비용에는 병원비(3만 7천 원)와 사고·상해·질병 치료비(1만 4천 원)가 포함된다. 단순 용품 구매를 넘어 의료·헬스케어 분야의 정기적 지출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료·헬스케어·보험·진단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제약사, 금융권이 앞다퉈 펫 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 반려동물용품의 온라인 채널 점유율은 2024년 기준 약 70% 에 달한다. 2019년 대비 약 20%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소비 채널의 디지털 전환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25년에는 반려동물산업 촉진 관련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제도적 기반도 본격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빠른 시장 팽창에는 그늘도 있다. 펫 산업 종사자들은 “시장 성장보다 진입 속도가 더 빠르다”며 “공급 과잉, 유사 제품 범람, 인증 부재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고, 실질적인 반려동물 복지와 무관한 상품도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된 과열 — 방향이 필요하다

펫 휴머나이제이션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동물학대의 심각성과 강력한 처벌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93.2%가 찬성 의사를 밝혔으며, 반려인(94.3%)과 비반려인(92.7%) 간 인식 차이도 크지 않았다. 동물보호법 인지도 역시 74.9% 로, 2021년(63.3%) 대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지면서, 내년 내 입양 계획이 있는 응답자 중 88.3% 는 유실·유기동물 입양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책임 있는 반려문화가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는 신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려동물이 ‘가족’이 된 사회에서 그들을 위한 선택은 늘 선의로 포장된다. 하지만 그 선택이 정말 반려동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만족과 시장 논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반려문화연구소 박신후 이사장은 “펫 휴머나이제이션이 진정한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속도 조절과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반려동물과 사람이 함께 지속 가능한 공존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이 방향을 설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