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독일 법학자 게오르크 엘리네크의 말이다. 사회 유지를 위해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가 법이라는 뜻이다.
2026년 대한민국 사법부는 그 ‘최소한’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내란 관련 판결들을 지켜보면 ‘사법 정의’라는 말이 무색하다. 법치주의를 흔드는 수준이다. 법리라는 미명 하에 흉악범에게 면죄부를 주고, 기계적인 중립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사법부를 향한 대중의 신뢰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다.
모든 죄가 명백함에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형량을 깎는 기계적 판결에 법정을 우롱하는 피고인에게 끌려다니는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른바 자기가 만든 설정을 스스로 파괴하는 판결도 이어진다. 몸통은 죄를 피하고, 꼬리가 죄를 뒤집어쓰는 기괴한 현상도 있다. 대중이 판사를 ‘법 기술자’라고 조롱하는 건, 사법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권위는 스스로 세우는 것이지, 법복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현실의 법정이 고장 난 시스템이 될 때 TV 법정물이 범람했다. 지난해 SBS ‘굿파트너’, JTBC ‘에스콰이어’, tvN ‘프로보노’, ENA ‘아이돌아이’, MBC ‘판사 이한영’ ‘아너: 그녀들의 법정’까지, 법정물이 넘친다. 놀랍게도 하나 같이 호평받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현실의 결핍이 그만큼 거대하다는 방증이다.
드라마 시대의 거울이다. 드라마 속 법조인들은 정의를 외친다. 법전 속에 갇히지 않는다. 죄지은 자는 확실히 벌하고, 억울한 자의 목소리엔 귀를 기울인다. 기계적 중립에 그친 법리 해석을 넘어 상식과 도덕이 통하는 판결을 내린다. 현실에선 실종된 ‘정의’가 브라운관 속에서는 살아 숨 쉰다.
대중이 이 판타지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실에선 그 기본조차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권력 눈치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현실의 판사들에게 지친 대중이, 드라마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고 있는 셈이다.

물론 현실에도 희망은 있었다. 특검의 구형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한 이진관 판사 같은 사례다. 대중은 그를 영웅이라 칭송했다. 냉정히 보면, 범죄자를 엄벌하는 건 판사의 영웅적 행위가 아니라, 밥값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당연한 일을 한 판사가 영웅 대접을 받는 현실이야말로, 우리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병들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현실의 법조인들이 신뢰를 잃어갈 때, 장나라, 정경호, 지성, 이나영, 정은채 같은 배우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그들이 연기하는 가짜 법정의 판결문이 실제 법원의 판결문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줬다. 작금의 법정 드라마의 열풍은 무능하고 비겁한 사법부를 향한 대중의 차가운 조소이자 경고다. 그리고 2026년 대한민국 법정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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