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캠프 극초반부터 불펜투구 경쟁

WBC영향 불구 트렌드 변화 곳곳 감지

2000년 초반 ‘3000구 투구론’ 재점화

속도보다 제구 힘보다 밸런스 집중해야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빠르다.”

스프링캠프가 서서히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캠프 초반은 대체로 투수들의 시간. 겨우내 무뎌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쉼없이 던지고 달린다. 타자들도 훈련하지만, 투수들이 던지는 ‘살아있는 공’을 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때문에 캠프를 지휘하는 사령탑도 훈련시간의 대부분을 불펜에서 보낸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다.

올해 스프링캠프는 극초반인데도 ‘페이스’에 관한 얘기가 많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이례적으로 1월에 불펜피칭을 시작했고, 아시아쿼터로 합류한 왕옌청은 두 차례 불펜피칭에서 모두 80개 이상을 던졌다. 선발 복귀를 노리는 두산 이영하 역시 벌써 100개 넘게 던져 화제가 됐다.

빠른 페이스와 많이 던지기는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다. 21세기 초반, 삼성에서 지도자 데뷔를 한 ‘국보’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떠오른다. 선수생활 마지막을 일본에서 한 선 전 감독은 사자군단의 투수 조련사 임무를 맡은 첫 스프링캠프에서 ‘3000개 투구론’을 외쳤다. 캠프 기간 3000개는 던져야 시즌을 치를 ‘던지는 체력’과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만년 2위’였던 삼성은 선 전 감독의 조련 아래 2002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고, 그가 사령탑으로 취임한 첫 두 해(2005~2006년) 통합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2002년은 가공할 타선의 몫이 컸지만, ‘감독 선동열’ 시대에는 지키는 야구로 불린 강철불펜의 힘이 컸다. 당시 집중 조련한 삼성 불펜진은 2015년까지 적어도 10년 간 KBO리그 불펜 야구의 축으로 활약했다.

지금은 다른 팀 코치가 된 ‘3000개 투구’ 멤버 중 한 명은 “매일 100개씩 던져도 30일을 꼬박 던지는 숫자다. 과장된 것”이라면서도 “많이 던지긴 정말 많이 던졌다. 하프, 라이브, 섀도피칭 등을 모두 합치면 체감상 3000개 이상 던졌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김성근 감독과도 생활했던 또 다른 코치는 “야신의 조련법과 국보의 조련법은 차이가 있다”면서도 “두 분 다 최상의 밸런스를 기억하고 반복할 때까지 투구 훈련을 시키고, 부상하지 않게 하려고 엄청난 양의 러닝을 함께 시켰던 분들”이라며 웃었다.

혹독한 캠프를 경험한 투수들은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지나고보니, 또 나이가 들다보니 많이 던져야할 때가 있구나 싶더라. 이건 혹사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에서) 선수 생명에 관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마냥 많이 던지는 게 능사는 아니다. 선 전 감독이나 김성근 감독 또한 “맹목적으로 던지는 건 노동”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어떤 밸런스로 공을 던지는지 의식하지 않은채 마구잡이로 던지는 건 오히려 부상 위험에 노출된다고도 강조했다.

불펜에서 공을 많이 던지는 건 스피드 향상 목적이 아니다. 불펜에서 시속 160㎞를 던져도 실전 마운드에 오르면 시속 150㎞ 언저리에 그치기 일쑤다. 이마저도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지 못하면, 무소용이다. 현역시절 ‘컨트롤 아티스트’로 불린 NC 서재응 수석코치의 일화가 재미있다.

그는 제구를 잡기 위해 독특한 훈련 루틴을 개발했다. 12개의 스트라이크존을 표시해두고, 구종 하나를 코스별로 5개씩 연달아 던지는 게 한 세트다. 몸쪽 높은 코스에 던진 다섯 번째 공이 존을 벗어나면, 처음부터 다시. 구종 하나가 끝나면, 다음 구종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반복훈련했다. 성공확률이 80~90%정도 되면, 구종을 섞어가며 반복하는 게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별칭을 갖게 만든 비결인 셈이다.

캠프 초반 분위기로는 시범경기 직전까지 “3000개 던졌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3000개 투구 중 원하는 곳에 몇 개를 던졌는지가 중요하다. 시즌 성패는 ‘원하는 곳에 얼마나 많은 공을 던졌는가’로 갈린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다. zzang@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