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한국 축구는 선수 시절 ‘신분’이 지도자 경력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로 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축구에서 감독을 하려면 선수 시절의 커리어가 꼭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2002 한일월드컵 성공 세대가 별다른 지도자 경력 없이 프로 사령탑에 오르는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지도자로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보다 신분이 중요한 시대였다.
일부 축구 팬은 한국 축구가 심각한 ‘지도자 돌려막기’에 의존하고 있다며 비판하는데, 긍정적인 신호가 눈에 보인다. 흐름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2026시즌 K리그를 보면 현역 시절을 화려하게 보내지 않은 사령탑이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수원 삼성 지휘봉을 잡은 이정효 감독이 대표적이다. 흔한 국가대표를 한 적이 없다. 그래도 프로 무대에서 200경기 이상을 뛰었으니 ‘동수저’ 정도로는 분류할 만하다. 대단한 선수 시절을 보낸 건 아니지만 이 감독은 K리그 최고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선수 때 모습을 기억하기 어려운 지도자도 많다. K리그 최고의 구단인 전북 현대 지휘봉을 잡은 정정용 감독은 프로가 아닌 실업 무대에서 뛴 축구인이다. FC안양 유병훈 감독은 현역 시절 두 자릿수 경기를 뛴 시즌이 한 번에 불과했다. 완전 무명은 아니지만 선수로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부천FC 1995의 승격을 이끈 이영민 감독은 1996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으나 1군 경기에는 나서지 못한 채 프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실상 프로 경험이 없다. 경남FC 배성재 감독도 현역 시절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에서 뛰었지만 3년간 14경기에 뛴 게 전부다. 그는 지난해 충남 아산에서 실패를 맛봤지만 축구계에서 전술가로 소문이 나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과거엔 현역 시절 커리어가 화려해야 선수단이 감독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따른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최근엔 분위기가 다르다.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당연히 선수 시절의 아우라가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카리스마와 지도력, 전술 능력, 훈련 세션 등이 갖춰지지 않으면 감독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라면서 “유럽처럼 우리도 커리어보다 당장 능력을 보는 시대로 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에는 유명 선수 출신 지도자도 밑바닥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강원FC 정경호 감독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학을 시작으로 프로 여러 팀에서 코치로 일한 끝에 사령탑으로 ‘입봉’했다. 지난해 그는 1년 차에 팀을 5위에 올려놓으며 실력을 입증했다. 화성FC 차두리 감독도 비슷한 케이스다. 유소년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프로 신생팀 화성을 이끌고 있다. 축구계에서는 이름값에 의존하지 않고 착실하게 단계를 밟는 이들의 행보를 이상적인 케이스로 주목한다.
결국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축구인도 지도자로 성공하려면 실력을 쌓아야 하는 시대다. 이름값을 믿고 공부하지 않으면 K리그에서 선택받지 쉽지 않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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