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백승관기자]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는 사람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밤길 걸어가는 순간에도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양 그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은 “도시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주범이자, 사회적 약속을 저버린 ‘디지털 유아들’이다.” <경험의 멸종> 저자 크리스틴 로즌의 주장이다.

서로의 존재를 잊은 채 스크린 속 세상에만 몰두하는 인간 군상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 문명의 불편한 단면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책은 기술이 우리의 감각과 경험을 어떻게 소멸시키는가를 정면으로 다룬다. 세련되고 학문적인 문체로, 우리가 잃어버린 ‘경험의 기술’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손글씨를 잊은 세대, 필기 대신 노트북을 두드리는 학생들, 음식과 풍경보다 카메라 렌즈를 먼저 의식하는 관광객들. 그녀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더 이상 멍하니 사색하거나 타인과 마주하는 법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책이 단순한 기술 비판서는 아니다. 저자는 이런 경향이 인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음을 인정한다. 소크라테스가 문자 발명을 비판했던 일화에서부터, 워크맨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고립된 청년’ 논란까지,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퇴화를 불러온다는 비난과 함께 등장했다. ‘셀피’ 열풍 역시 빅토리아 시대 사진가들이 즐기던 자화상의 현대판일 뿐이다.

저자의 시선은 여전히 기술에 대한 불신 쪽이다. 구글 지도처럼 삶을 실제로 편리하게 만들어준 혁신이나 온라인 연결이 제공한 새로운 가능성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과 SNS가 인간의 집중력, 공공성, 공감 능력을 갉아먹는다는 주장에 집중한다.

그의 문제의식이 기술 탓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확실하다. 공연장에서 영상을 찍거나 영화관에서 화면을 켜는 관객의 무례함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의 무관심과 자기중심성은, 사실상 수십 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적 가치관 즉, ‘인간은 시장 속의 소비자’라는 사고방식이 만든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자가 소속된 싱크탱크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AEI)’는 바로 그 자유시장 이념을 옹호해 온 기관이다. 따라서 그녀의 보수적 비판에는 자기모순이 깃들어 있다. 사회를 파편화시킨 경제 논리가 낳은 결과를, 그녀는 기술 탓으로만 돌리는 셈이다.

책은 스마트폰 시대의 불안과 피로를 예리하게 포착한 책이지만, 그 진단은 완벽하지 않다. 기술이 인간을 타락시켰다기보다, 인간이 이미 그러한 욕망을 품고 있었음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글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언제, 아무 화면도 없이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gregory@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