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회사는 감옥이지만, 밖은 지옥”이라는 요즘 세상에서 퇴사는 지옥문이 열리는 셈이다. 특히 한 회사에서 오랜 경력을 갖고 딱히 재주가 없는 50대 직장인에게 퇴사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그간 쌓은 사회적 커리어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 부장 이야기’)에서 인사팀장은 살아있는 저승사자다. 결국 회사에 득이 되지 않는 인력을 내보내는 것이 그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자원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도 연봉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물을 내보내는 건 효율을 따지는 기업엔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자칫 방만한 경영으로, 책임을 다하는 인력이 피해를 볼 수도 있어서다. 배우 이현균은 살아있는 저승사자를 뱀처럼 연기했다. 훌륭하다 못해 공포까지 안겼다.

최재혁 인사팀장을 연기한 이현균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PD님께서 제가 영화 ‘강릉’에 출연한 모습을 인상 깊게 보신 것 같다. 무서운 역할이었는데, 인사팀장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등장부터 공기가 달랐다. 최대한 존중을 지키는 듯 하지만, 속내는 시꺼먼 게 엿보였다. 어딘가 가볍게 툭툭 내뱉는 리드미컬한 화법엔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묵직한 내용을 편안하게 전하는 지점에서 공포가 생겼다.

“인사팀장은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만약 감정을 넣고 연기하면 ‘본 투 비 나쁜 놈’이 될 것 같았어요. 최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연기하려고 했죠. 대본을 붙잡고 이리저리 하다보면 딱 느낌이 걸려 들 때가 있어요. 그 인물을 다각도로 제 안에 쌓는 거죠. 최대한 준비하고 현장에서 풀어냈어요.”

“인사팀장을 보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온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직장에서 잘못을 저지른 후 인사팀을 만나거나, 감사팀을 대면한 사람들에겐 식은땀이 나는 공포다. “실제 직장인을 데려와 연기를 시켰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현균은 살면서 직장을 다닌 경험이 없다.

“엘리트 농구를 하다 접고 나서 연극학과에 간 뒤 연극무대에서만 지냈어요. 저는 살면서 직장을 다닌 경험이 없어요. 저를 회사원으로 인식할 거란 생각은 많이 못했어요. ‘실제 인사팀장을 갖다 놓으면 어떡하냐’는 댓글은 정말 짜릿했죠. PTSD 얘기도 그렇고요. 제가 연기를 잘했다기보다는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저를 더 잘 포장해주셔서 이런 반응이 온 것 같아요.”

농구 선수 출신 배우다. 무한 경쟁 능력주의가 가장 뾰족한 곳이 스포츠 세계다. 어릴 때 이미 세상을 배웠다. 연극계로 진출해서도 쉽지 않았다. 무명 시절이 길었다. 스스로 재능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천천히 걸었다. 깊고 진하게 연기를 탐구했다. 지칠만 하면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버텼다. 이제는 엄청난 선배 사이에서 빛나는 생동감을 그려내는 배우로 성장했다.

“극단에서 ‘좋은 질문을 던져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질문이 좋지 않으면 결국 좋은 인물을 만들지 못하는 거죠. 저는 주목받고 싶은 사람인 거 같아요. 주목받는 힘으로 버텨온 것 같아요. 좋은 연기로 진한 관심 한 번 받고 싶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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