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부산=서지현 기자] 배우 심수빈이 영화 ‘지우러 가는 길’ 위에 섰다. 첫 장편에, 첫 주연작에, 첫 부산국제영화제다.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심수빈의 첫 장편 주연작 ‘지우러 가는 길’은 담임선생님과 비밀 연애 후 임신한 윤지(심수빈 분)가 잠적한 선생님을 찾기 위해 임신 중단을 결심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지우러 가는 길’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첫 장편 주연작에 첫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까지 ‘겹경사’를 맞은 심수빈은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인근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나 “얼떨떨하다. 사실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좀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소를 보였다.
꽤 덤덤한 모습으로 취재진과 만난 심수빈이지만 지금의 초연함을 갖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심수빈은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기 전까지의 감정을 ‘무서움’으로 표현했다.
“제가 나온 작품이 영화관에서 틀어지는 거잖아요.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아쉬운 점도 많고, 잘 못한 부분도 많거든요. 서툰 모습이 너무 많이 담긴 것 같아요.”

첫 장편 영화 도전이니 신인 배우로서 걱정이 많을 만도 하다. 마지막 촬영 3일 전부터 몰려온 감정은 심수빈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심수빈은 자신만의 오답노트를 적었다.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을 다지는 과정이었다.
심수빈은 “첫 장편 영화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일지 잘 모르겠더라. 그 두려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마음에서 커졌다”며 “근데 기술 시사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집에 가서 오답노트를 적어 보니까 두려움이 조금씩 가시더라. 이젠 좀 괜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소속사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게 됐다는 심수빈과 ‘지우러 가는 길’ 윤지의 첫 만남은 운명 같았다. 서툰 10대의 감정선부터 친구 관계, 방황까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대본이었다. 오디션장에 간 심수빈은 당차게 “저 좀 윤지 같아요!”라고 외쳤다.
다만 작품 속 윤지는 아픔이 많은 인물이다. 도망간 아버지로 인해 돌아갈 집조차 없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호의를 베푼 유부남 담임 선생님과 사랑에 빠졌고, 그렇게 아이를 갖는다. 윤지의 임신을 알게 된 선생님이 자취를 감춘 뒤엔 홀로 모든 시간을 감당하게 된다.
그런 윤지에 대해 심수빈은 “저보다 상처가 많은 친구예요”라고 표현했다. “윤지는 방어적으로 사람을 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누군가의 애정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그렇게 행동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모든 순간이 이해되고, 공감 가는 친구예요.”

윤지의 ‘지우러 가는 길’ 동행자는 룸메이트 경선(이지원 분)이다. 윤지가 불법 임신 중단을 위해 경선의 돈에 손을 대며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뒤늦게 윤지의 사정을 알게 된 경선은 미혼모인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며 기꺼이 그 길의 동행자가 된다.
작품 속 윤지와 경선처럼 심수빈 역시 상대 배우 이지원을 믿고 의지했다. 심수빈은 “현장에서 의지하게 되더라. 저보다 훨씬 프로였다. 연습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장면을 책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마지막에 두 사람이 학교 뒷산을 내려가는 장면이 있다. 이지원이 저에게 성큼성큼 다가와서 손을 내밀어주는데 그 순간 우리가 정말 경선이와 윤지 같다고 생각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 그려지는 작품은 10대 미혼모, 불법 임신 중단 등 다소 예민한 주제를 담고있다. 심수빈은 “사실 작품 전까진 불법적으로 낙태 약물을 구매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감독님이 많은 걸 알고 계셨는데 어떤 사명감이 있으시다는 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저는 연기를 함에 있어서 윤지의 마음에 조금 더 집중했다. 윤지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잘못된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느껴졌다. 관객분들도 윤지의 선택이 ‘최고’는 아니지만 응원해주시길 하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윤지에게도, 심수빈에게도 ‘지우러 가는 길’은 하나의 여정이었다. 10대 끝자락에 선 윤지가 그 길 위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했다면, 첫 장편 영화에 도전한 심수빈은 배우 인생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았다.
심수빈은 “이 작품이 첫 장편 영화고, 첫 주연이라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지 잘 몰랐다. 제 첫 인물이 윤지였다는 점에서 적합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부족한 부분들이 많은데 이 작품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다음 작품에선 조금 덜 아쉬움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심수빈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히어로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나오는 작품보단 인물이 진짜 어딘가에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영화가 좋다”는 심수빈이다. 소위 ‘땅에 발을 붙인 이야기’로 우리 모두의 삶을 그려내고 싶다는 포부다.
“저는 사실 세상에서 제가 제일 좋아요. 제가 뭘 잘못해도, 뭘 실수해도 저한테 실망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멋져 보이는 순간도 있지만 ‘그럼 너, 저 사람 될래?’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에요. 제가 저를 좋아하는 게 제 강점이에요. 부러지지 않고, 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연기하고 싶어요.”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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