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시대극들이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다. 과거의 시간을 불러내 현재의 감각을 자극하는 이 장르가 최근 가장 뜨거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폭싹 속았수다’를 시작으로, ‘파인: 촌뜨기들’, ‘애마’, 그리고 곧 공개될 청춘 로맨스 ‘고백의 역사’까지, 대표작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시대극의 전성기를 보여주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애순(아이유·문소리)과 관식(박보검·박해준), 그리고 금명으로 이어지는 세대의 삶을 담아냈다. 제주 방언으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의미를 가진 제목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 세대와 앞으로 살아갈 자녀 세대를 향한 헌사로 기획된 이 드라마는 세대를 관통하는 공감을 전하며 안방극장을 울렸다.

특히 여성 인물들의 서사가 강한 울림을 남겼다. 식모살이의 굴레를 끊고 싶었던 광례에서, 딸 금명에게만큼은 다른 길을 열어주고자 했던 애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한국 여성의 초상을 보여줬다.

여기에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관식과 딸의 삶을 든든히 지탱하는 가족애가 더해지며 작품은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냈다. 관식의 인물상은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부성애를 그려내 시청자들에게 큰 여운을 남겼다.

600억 원이 투입된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제작비가 아니라 인물들의 삶이 먼저 기억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매주 4회씩 공개하는 방식은 시청자들의 감정을 차분히 쌓아 올렸고, 결국 ‘용두용미’라는 평가 속에 완성도 높은 서사로 마침표를 찍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은 1977년 신안 앞바다 보물선을 둘러싼 욕망과 배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원나라 무역선이 침몰하며 수장된 고려 도자기를 두고 관석(류승룡)과 조카 희동(양세종), 그리고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모인 인물들이 한탕을 꿈꾸며 몰려든다.

도자기를 건져 올리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아래 사기꾼, 사업가, 건달, 잠수사까지 얽히지만, 모두 자기 몫만 챙기려는 탐욕 탓에 협력은 깨지고 파국으로 향한다. 인양과 속임수, 살인이 반복되며 이야기는 단순하게 흐르지만, 무모하게 달려드는 인간 군상 자체가 시대극의 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드라마의 힘은 거대한 서사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 있다. 강윤성 감독 특유의 인물 묘사로 짧게 등장하는 캐릭터조차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중 임수정이 연기한 양정숙은 작품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는다.

천회장의 아내이자 돈에 집착하는 양정숙은 유일하게 머리를 쓰며 판을 주도하는 인물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순박하지만 무모한 촌뜨기들 사이에서 전략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 임수정은 생활력 강한 욕망의 화신을 카리스마 있게 그려내며 원작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영화 전성기의 풍경을 새롭게 풀어낸 6부작 코미디다. 이해영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화제작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을 소재로 삼되, 단순 재현이 아닌 여성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당대 영화계의 폭력성과 모순을 풍자한다.

실제 충무로를 옮겨놓은 듯한 세트와 화려한 색감은 당시의 공기를 생생하게 불러오고, 당시 톱스타 정희란으로 분한 이하늬는 세련된 의상과 사투리 연습까지 더해 입체적인 인물을 완성했다.

작품은 권력과 자본 속에 여성 배우들이 어떤 식으로 소비되고 억압받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신주애 역의 방효린이 충무로의 거친 현실에 맞서 성장하는 과정과 정희란과의 미묘한 연대는 억지스럽지 않게 그려지며, 여성 캐릭터의 단단한 변화를 중심에 놓는다.

당시 검열 제도와 ‘애마부인’의 한자 변경 일화까지 끌어와 시대의 아이러니를 드러낸 시리즈는 단순한 향수극을 넘어, 과거를 현재적 언어로 풍자하는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됐다.

오는 29일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고백의 역사’는 1998년, 열아홉 소녀 박세리(신은수 분)가 일생일대의 고백을 앞두고 평생의 콤플렉스인 악성 곱슬머리를 펴기 위한 작전을 계획하던 중 전학생 한윤석(공명 분)과 얽히며 벌어지는 청춘 로맨스 영화다. ‘힘을 낼 시간’으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고,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감각적인 연출을 인정받은 남궁선 감독의 신작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막연히 시대상을 그리던 과거와 달리 요즘 작품들은 구체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내 집중력이 높다”며 “그 사건을 통해 시대 전체를 조망하기 때문에 울림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대극은 기본적으로 복고적 감성을 건드린다”며 “당시를 산 세대에게는 푸근함을, 젊은 세대에게는 신기함과 새로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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