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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인성, 박경완, 진갑용, 홍성흔. 사진 |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며 마지막 불꽃을 태운 포수 조인성(42)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조인성의 은퇴와 함께 1990년 대 프로 무대에 데뷔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20세기 포수들의 시대도 KBO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올해 6월 소속팀 한화로부터 방출되면서 현연 연장과 은퇴의 갈림길에 섰던 조인성이 20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조인성은 8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통해 은퇴 소식을 알렸다. 그는 “9살 때부터 34년간 오직 한 길을 걸어오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 펼쳐질 34년의 인생은 한국야구와 팬 여러분께 빚진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겠다. 초심을 잊지 않는 ‘야구인’ 조인성이 되겠다”며 은퇴 소감을 전했다. 프로 생활 20년 동안 통산 1948경기 타율 0.252, 186홈런, 801타점을 기록하며 굵직한 족적을 남긴 조인성의 선수 시절은 이제 기록으로 남게 됐다. 조인성은 두산 김태형 감독에게 코치 제의를 받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인성이 은퇴를 발표하면서 20세기 포수들의 시대도 완전히 저물었다. 조인성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며 KBO리그 역사에 레전드 포수로 남아있는 선수로 박경완, 진갑용, 홍성흔을 꼽을 수 있다. 포수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 KBO리그에서는 세 선수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종종 나오곤 한다. 그만큼 세 선수가 KBO리그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만수(전 삼성) 이후 최고 포수의 계보를 이으며 각종 역대 포수 기록을 갈아치운 박경완 코치의 현역 시절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1991년 쌍방울에서 데뷔한 그는 주전으로 도약한 1994년부터 포수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허를 찌르는 투수 리드와 도루저지 능력으로 ‘포도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1997년 현대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로는 폭발적인 타격까지 겸한 양수겸장의 안방마님으로 군림했다. 2000년에는 국내 최초 4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시즌 40개의 홈런을 치며 2000시즌 정규 리그 MVP를 수상했다. 2001년에는 포수 최초 20(홈런)-20(도루)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SK로 팀을 옮긴 뒤에도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그의 등번호 26번은 SK 구단 최초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오랫동안 삼성의 간판 포수로 활약하며 이름을 떨친 진갑용 코치도 KBO리그를 대표했던 포수 중 한 명이다. 이만수 이후 수준급 포수가 없었던 삼성에게 진갑용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삼성의 2002년 통합우승과 2005~2006년 2연속시즌 우승에 큰 기여를 했으며, 이후에도 팀의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국가대표로도 뽑혀 1998년 아시안게임과 2008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포수로 3차례 골든글러브(2002, 2005, 2006)를 수상했다. 2011년 이후 삼성이 왕조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진갑용이 지키는 안방에서 비롯됐다. 공교롭게도 그의 은퇴와 함께 삼성의 통합우승 신화도 막을 내렸다.

최근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코치로 선임됐다는 깜짝 소식을 전한 홍성흔 코치 역시 20세기에 탄생한 레전드 포수다. 1999년 두산에 입단하자마자 주전 포수가 된 그는 그해 타율 0.258, 16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인 홍성흔은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전성시대를 열었고, 이후에도 두산의 안방 마님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포수로 두 차례(2001, 2004)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8년 포지션 변경 후 은퇴할 때까지 줄곧 지명타자로 뛰었지만 포수 홍성흔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야구팬의 뇌리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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