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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최정식기자] 농구에서 테크니컬 파울은 상대팀 선수와 신체접촉이 없는 파울을 말한다. 여러가지 행위가 적용 대상이 되지만 심판의 판정에 대한 항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신체접촉에 의한 파울의 경우 규정된 행위가 실제로 일어났느냐가 논쟁의 대상이 되지만. 테크니컬 파울은 어느 정도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선언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또 다른 항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테크니컬 파울은 코트에서 뛰고 있는 선수뿐 아니라 감독을 비롯한 벤치 인원에게도 선언된다.
테크니컬 파울은 반복되는 공방 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지만 경기의 중요한 상황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승부처나 접전 상황의 경기 후반에 나올 경우 테크니컬 파울을 받은 쪽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투와 공격권, 개인 및 팀 파울 증가 자체가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데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집중력을 잃을 가능성도 크다.
테크니컬 파울은 받은 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테크니컬 파울은 심판의 원활한 경기 운영을 위한 수단이지만 때로는 감독에 의해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드물지만 이미 한 차례 ‘벤치 테크니컬’을 받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두 번째 테크니컬 파울을 유도, 실격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퇴장으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전략적 판단이다. 그럴 경우 심판은 어떻게 할까. 규칙대로 ‘고의로 또는 되풀이해서 비협조적이거나 불복하는 행위’로 간주하기도 하고, 감독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그대로 넘어가기도 한다.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의 임근배 감독은 24일 벌어진 구리 KDB생명과의 홈경기에서 2쿼터 후반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이후 임 감독은 “설명해 달라는데 설명은 해주지 않고 왜 테크니컬 파울이냐”고 외쳤는데 체육관에 울려퍼질 정도로 목소리가 컸다. 초반부터 고전하던 삼성생명이 24-31로 뒤져있는 상황이었다. 임 감독의 ‘벤치 테크니컬’로 KDB생명 이경은이 자유투 1개를 넣었고 이어진 공격에서는 득점이 없었지만 그 뒤의 공방에서 KDB생명이 3점슛과 자유투로 4점을 더해 하프타임에 점수차는 12점으로 벌어졌다. 그러나 3쿼터 한때 18점차까지 뒤졌던 삼성생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격을 계속했고 4쿼터에 경기를 뒤집어 결국 69-66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임 감독은 경기 후 “배혜윤의 레이업 때 수비가 팔을 치는 파울이 나왔는데 잡아주지 않아 항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삼성생명은 지난 21일 부천 KEB하나은행과의 홈경기에서 연장 끝에 67-76으로 졌다. 삼성생명은 이 경기에 대해 심판 설명회를 요청했고 일부 판정 잘못이 인정됐다. 임 감독은 KDB생명과의 경기를 앞두고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하나은행과의 경기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쳤다는 생각,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꼭 하나은행전 패배의 후유증 때문은 아닐 수도 있지만 삼성생명 선수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감독의 테크니컬 파울이 나온 이후에도 계속 뒤졌지만 3쿼터 후반부터 강력한 압박 수비가 효과를 거두기 시작했고 배혜윤과 키아 스톡스의 골밑 공략도 활기를 띠었다. 그리고 4쿼터에 경기를 뒤집었다. 역전이 되기 전인 4쿼터 중반, 코트에서 뛰고 있던 다섯 명 가운데 고아라를 제외한 박하나, 배혜윤, 스톡스, 유승희 등 4명이 4반칙으로 파울트러블에 걸려 고비를 맞았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5반칙으로 물러나지 않았다.
2쿼터 배혜윤의 레이업이 실패했을 때 삼성생명은 5점차로 뒤지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때까지의 경기력을 볼 때 3점차로 따라붙었더라도 주도권을 되찾아 왔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반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테크니컬 파울을 감수하며 판정에 항의한 감독의 모습은 결과적으로 효과를 거뒀다. 그 바탕에는 3일 전의 아쉬운 패배가 있다. 판정에 따른 불이익을 그대로 넘기지 않겠다는 감독의 ‘시위’가 선수들에게 남아있는 피해의식을 지운 것이다.
물론 임 감독은 자신의 항의가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위해 의도에서 한 것이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감독 자신도 앞 경기의 영향으로 화가 났을 뿐일지도 모른다. 테크니컬 파울을 받을 정도의 항의가 옳은 일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테크니컬 파울을 언제 어떻게 받느냐도 경기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bukr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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