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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 피시가 펠리시아노 로페스와의 US오픈 남자단식 2회전이 끝난 뒤 관중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출처 | US오픈 홈페이지

[스포츠서울 체육부 선임기자] 지난 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US오픈 남자단식 2회전. 3시간 11분간에 걸친 경기가 끝난 뒤 루이 암스트롱 스타디움을 꽉 채운 관중은 패한 선수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마디 피시(34·미국)가 15년 간의 프로 테니스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피시는 이날 18번 시드인 펠리시아노 로페스(스페인)에게 2-3(6-2 3-6 6-1 5-7 3-6)으로 졌다. 한때 세계 7위였던 그의 랭킹은 581위까지 떨어졌다. 최근 3년간 경기에 거의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올 여름 하드코트 서키트에 참가하며 US오픈을 준비했다. 그러나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5세트를 치르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기중 여러 차례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풀어야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마지막 세트 두 게임 정도를 남겨 놓고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마쳤다. 네트 앞에서 피시와 악수를 나눈 뒤 로페스는 장내 인터뷰를 통해 “오늘은 그가 나보다 잘했다. 승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마이크가 돌아오자 피시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 고별전 이전에 피시가 US오픈에 나섰던 것은 2012년이었다. 그때 그는 4회전에 진출해 로저 페더러(스위스)와의 대결을 앞두고 있었으나 공황발작 때문에 기권해야 했다. 그해 마이애미 대회에서는 공황장애에 따른 발작으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불안발작 증상 때문에 그는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는 약물과 심리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적 상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혔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스포츠에서 자신이 정신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테니스뿐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강한 멘털’은 필수적이다. 선수들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면에서도 항상 강인함을 유지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선수로서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한동안 코트를 떠나 있었던 피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US오픈에 나선 뒤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US오픈의 마지막 기억은 충격과 좌절이었다. 그것을 좋은 추억으로 바꿔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공황장애를 비롯한 정신적 문제로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기를 바랐다.

그는 1회전에서 마르코 케치나토(이탈리아)에게 3-1(6-7 6-3 6-1 6-3)로 역전승을 거뒀다. 첫 경기에서 승리한 뒤 인터뷰에서 그는 “코트에서 계속 나 자신에게 이야기했다. ‘괜찮을 거야’, ‘다 잘 될 거야’라고. 3년 전 나는 정말 힘든 상황에 있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오랫 동안 애를 썼다. 마침내 이겨내서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피시는 은퇴 후 골프를 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즐겁게 살아갈 계획이다. 그는 테니스 선수로 뛰면서 6개의 투어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승리는 마지막 US오픈에서의 분투가 아니었을까. 불안과 공포보다 더 강한 적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bukr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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