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최근 코미디언 이수지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유치원 선생님’ 캐릭터가 연일 화제다. 학부모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온갖 민원에 시달리며, 아이들 앞에서는 천사 같지만 뒤돌아서면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폭소를 유발함과 동시에 기묘한 씁쓸함을 남긴다. 이 코미디가 ‘극사실주의’로 불리며 박수받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육아와 교육 현장이 직면한 ‘과잉보호’라는 서글픈 단면을 정확히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현상을 단순히 일부 학부모의 유난스러운 태도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 코미디가 풍자하는 본질은 아이를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하게 키워내겠다는 광기 어린 ‘과잉보호’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시스템이다. 앤 헬렌 피터슨의 저서 ‘요즘 애들’은 이를 전문가의 지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부모의 감정을 노동처럼 소모하는 ‘집중 양육(Intensive Parenting)’의 결과물로 분석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과거 기업의 관습이었던 ‘위기 관리’가 이제는 주류 양육 전략이 되었다는 맬컴 해리스의 지적이다. 학부모들은 아이의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불편함이나 갈등조차 반드시 제거해야 할 ‘위기’로 규정한다. 이러한 ‘제로 리스크’에 대한 강박은 최근 한국 학교에서 소풍, 수학여행, 운동회가 차례로 사라지고 있는 현상과 그 궤를 같이한다.

단체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찰과상 하나,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 하나를 부모들이 ‘관리되지 않은 위기’로 간주하고 학교에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서, 학교는 결국 ‘사고의 가능성’ 자체를 거세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또래와 어울리며 갈등을 겪고 타협하는 법을 배우던 소중한 사회적 실험실들이 ‘위기 관리’라는 명목하에 폐쇄되고 있다.

‘요즘 애들’의 저자는 이러한 집중 양육이 아이들에게서 ‘자연스러운 성장’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어른의 감독 없이 또래끼리 규칙을 만들고 협상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아이들의 독립성을 키우는 핵심 자양분이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성인이 감독하는 정교한 시나리오 안에서만 움직인다. 동네에서의 자유로운 놀이가 성인이 감독하는 경쟁적인 리그 스포츠로 대체되고, 스스로 심부름을 하며 얻던 성취감은 부모가 대신 처리해 주는 ‘무결점 일상’ 뒤로 사라졌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이렇게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유약하고 게으른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위험을 피할 능력”으로만 자신을 정의하는 불안한 존재로 성장한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대가를 치러본 적이 없기에 작은 실패에도 삶이 무너지는 공포를 느끼며, 일이 없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무력한 상태에 빠진다.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이들이 기댈 곳은 결국 또 다른 심리치료와 부모의 울타리뿐이다.

이수지의 코미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제공하는 촘촘한 위기 관리가 과연 아이들을 위한 사랑인가, 아니면 부모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이기적인 방어기제인가. 이제는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실패할 자유’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할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넘어지고, 소풍길에서 길을 잃어보기도 하는 그 ‘자연스러운 불편함’이야말로 아이들을 진짜 어른으로 만드는 필수 과정이다. 교실의 공수교대를 정상화하고 소풍과 운동회를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 그것이 ‘요즘 애들’을 번아웃의 늪에서 건져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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