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데뷔 28년 차, 맑고 씩씩한 얼굴이 베이스다. 늘 웃는 얼굴로 싱그러운 봄기운을 전달했던 하지원이 돌변했다. 독기를 품었다. 우아한 미소 뒤에 서늘한 욕망을 감추고,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되는 길을 택했다. ENA ‘클라이맥스’ 속 배우 추상아를 입은 하지원의 낯선 얼굴은 압도적이다.

하지원은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ENA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매 신 감정을 쏟아붓다 보니, 제목인 ‘클라이맥스’처럼 감정 소모가 컸다. 상아로 살아오며 거식증에 가까운 고통을 겪기도 했다. 감독님께 힘들다고 토로한 적도 있다”며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추상아로 버텼던 시간을 털어놨다.

◇슬립이 남아도는 ‘버석한 빌런’의 탄생

추상아는 과거의 영광과 스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모멸감도 견뎌내는 인물이다. 돈밖에 없는 이양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심지어 계란도 맞는다. 천박한 DNA 앞에서 매몰차게 무시당함에도 꿋꿋하게 버틴다. 스타라는 위상이 곧 생명이라서다. 촘촘한 권력과 생존의 굴레 속에서 상아는 서서히 변모한다. 악한 가면이 낯섦에도 불구하고, 하지원은 추상아의 ‘생존’에 동화됐다. 결국 딱 맞는 얼굴을 만들었다.

“추상아는 환경과 관계 속에서 정체성이 변하는, 매우 불안정한 존재예요. 권력에 대한 욕망과 생존 본능으로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이해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죠.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하는 무서운 돌변과 가짜 연기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외형부터 처절하게 바꿨다. 나이가 들어도 완벽하게 관리된, 뼈가 보일 듯 예민하고 버석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체중을 45kg까지 감량했다.

“슬립을 입어도 옷이 헐렁하게 남을 정도로 근육을 얇게 만드는 운동을 했어요. 감정 고스란히 받아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졌어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 “연기 그만둘까 반성도”…세상과 부딪히며 배운 인간의 ‘욕망’

공백이 있었다. 이지원 감독과 함께 작업한 영화 ‘비광’ 작업이 미뤄진 후, 시간이 비었다. 하지원은 화장품 사업 등에 뛰어들며 인생의 거센 롤러코스터를 겪었다. 카메라 밖 현실에서 인간관계와 자아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했던 시간을 가졌다. 그간 쌓아온 모든 성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집을 올리는 변화를 맞았다.

“배우로만 살아오다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제 자신에 대한 탐구가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배우로서 부끄럽기도 했고, 연기를 그만둘까 하는 깊은 고민도 했었죠. 하지만 사업을 하며 진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보다 보니, 인간의 ‘욕망’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시간 동안 축적된 감정들이 추상아라는 인물을 아주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됐어요.”

◇ 젠지(GenZ) 세대와 소통하는 ‘진짜 신인’의 마음으로

무거운 빌런의 허물을 벗은 현실의 하지원은 낭만적이고 유쾌하다. 최근 대학가 밴드부 등 20대 초중반의 젠지 세대들과 소통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조리&푸드디자인학과에 26학번으로 입학한 것이다.

“최근 수업 중에 반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교수님한테도 반말을 하더라고요. 충격이 컸어요. 수업 끝난 친구들이 ‘지원아 셀카 찍을래?’ 하고 다가올 때마다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정말 재밌어요.”

긴 슬럼프와 자아 탐구의 시간을 지나, 완벽한 악역으로 두 번째 전성기의 포문을 열었다. 자신을 향한 탐구 이후 초심을 찾은 하지원의 열정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몰랐어요. ‘클라이맥스’를 찍으면서 정말 신인으로 돌아간 느낌이었거든요. 장르물, 액션, 코미디, 사극도 다 하고 싶어요. 의욕이 마구 넘칩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죽기 전에나 알 수 있겠지만, 저만의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피와 땀을 흘릴게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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