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타이밍은 예술에 가깝다. 1심 판결에 승소하고, 항소 단계로 넘어가기 전 대중의 피로감이 가장 적을 때다. 반격의 적기나 다름없다.
게다가 ‘256억원 포기’와 함께 대승적인 화합을 요구하는 메시지도 매우 그럴싸해 보였다. 민희진 오케이 레코즈 대표의 허를 찌르는 설계로 주도권을 가져가는 능력은 확실히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하이브가 민 대표의 ‘빅딜’에 응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 256억=467억? 계산 안 맞는 ‘마이너스 거래’
민 대표가 제시한 256억원이라는 금액은 1심 판결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하이브가 즉각 항소함에 따라 법정 다툼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확정되지도 않은 채권을 담보로 내민 셈이다. 게다가 시가총액 수조 원에 달하는 하이브에게 256억원은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만한 치명적인 타격이 되지 않는다.

산수도 맞지 않는다. 비대칭성이 심각하다. 민 대표가 256억 원을 포기하는 대가로 하이브에 취하를 요구한 소송들의 규모는 이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당장 어도어가 전속계약을 위반했다며 뉴진스 전 멤버 다니엘과 민 대표 등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만 430억원대다.
여기에 아일릿의 빌리프랩(20억), 르세라핌의 쏘스뮤직(5억), 신우석 감독을 향한 11억원(1심 10억 승소) 등 얽히고설킨 소송액을 모두 합치면 민 대표가 쥐고 있는 256억원의 가치를 가볍게 상회한다. 하이브 입장에서는 턱없이 밑지는 장사를 당당하게 제안받은 셈이다.
◇ 사과 한마디 없는 ‘적반하장’ 평화 협정
민 대표의 태도도 하이브가 제안을 수용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번 분쟁 과정에서 하이브 산하의 다른 아티스트들(아일릿, 르세라핌 등)과 관계자들, 그리고 팬덤은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주주들 역시 막대한 피로감과 손실을 겪었다.
이 거대한 갈등을 봉합하려면 자신으로 인해 파생된 타 레이블의 피해에 대한 사죄가 선행됐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민 대표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어른들이 무대가 아닌 법정에서 싸우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화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기 상조에 가깝다.
법원에서도 민 대표의 행위가 “중대한 범법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

방시혁 의장 입장에선 아무리 대승적 결단을 내리고 싶어도, 상처받은 자사 아티스트들과 주주들을 배신하면서까지 이 제안을 수용할 명분이 없다.
◇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낭독회’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모양새다. 지난 25일 열린 기자회견은 민 대표의 전략적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늘 그랬듯 스케줄을 꼬아버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루 전 기습 공지했고, 약속된 시간보다 6분 지각해 등장한 그는 5분 남짓 준비된 입장문만 읽고 현장을 홀연히 빠져나갔다. 지각에 대한 도의적인 사과도 없었다. 질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 질의응답 시간이 없을 거라는 내용도 고지하지 않았다.
언론을 ‘단순 스피커’로만 취급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통과 화합을 제시한 이날의 메시지와 배치된다. 1시간 넘게 대기한 취재진 사이에선 “기자를 동원한 행위”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민 대표의 ‘빅딜’은 화려한 명분으로 포장됐을지언정, 그 실체는 일방적이면서 부실한 거래 제안에 불과하다. 그런 가운데 민희진의 빅딜을 하이브가 진지하게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결과적으로 하이브와 민 대표의 진짜 승부는 기자회견장이 아닌, 차가운 법정 안에서 판가름 날 공산이 크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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