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김)민이는 삼고초려도 없었어요. 민이 입장에선 ‘웬 떡이냐’ 싶었겠죠.(장항준 감독)”

장항준 감독의 말처럼 이번 만남에는 복잡한 계산도, 긴 설득도 없었다. 옛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이 넓은 영화계에서 세 작품을 함께했다면 그 관계는 인연을 넘어선다. 영화 ‘리바운드’와 ‘더 킬러스’를 거쳐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까지, 그렇게 배우 김민과 장항준 감독은 다시 한 번 같은 세계로 돌아왔다.

영화 ‘왕사남’은 1457년 청령포에서 마을의 부흥을 위해 스스로 유배지를 택한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와 왕위에서 쫓겨나 어린 나이에 유배된 선왕 단종 이홍위(박지훈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민은 극 중 엄흥도의 아들 엄태산 역을 맡았다. 학문에 대한 열망은 있으나 현실의 제약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는 인물이다.

김민에게 ‘왕사남’의 개봉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며 자라왔고, 영화를 하고 싶었던 한 배우 지망생 시절의 마음이 떠올랐다. 특히 설 연휴는 극장가에서 꼽는 대목 중 하나다. 그런 시기에 영화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작품이 가진 무게다.

김민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영화가 잘 돼서 영화계 전체가 다시 활기를 되찾고, 더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항준 감독과 세 번째 작업으로 선보이는 ‘왕사남’은 김민에게 운명처럼 찾아왔다. 앞서 제작사 대표가 엄태산 역으로 김민을 추천했고, 장항준 감독 역시 이미 여러 번의 인연이 있어 단번에 결정했다. 이에 대해 김민은 “역시나 좋은 대본이었고, 좋은 캐릭터였다. 잘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민은 함께 작업했던 이들의 재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감독 한 사람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여러 제작진과 관계자들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김민에 대해 장항준 감독은 “볼 때마다 많은 가능성과 다양한 얼굴을 지닌 배우”라며 “데뷔 때부터 함께해 정이 있다.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은 배우”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캐스팅 과정 역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복잡하지 않았다.

“이젠 어떤 말씀을 하셔도 믿음이 있어요. 저도 사적인 자리에서 감독님한테 농담을 많이 해요. 그 정도 농담은 서로 ‘오케이’가 되는 거죠. 저희 관계가 워낙 단단해서.(웃음)”

김민이 엄태산이라는 인물에 접근할 땐 인물의 ‘제약’에 주목했다. 김민은 “태산은 학문에 대한 열망과 재능을 지녔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펼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며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아버지 엄흥도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마을 사람들과는 어떤 거리감을 유지하는지를 감독님과 함께 차근차근 만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김민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완전히 다정한 부자 관계라기보다는 어딘가 어색함이 남아 있는 현실적인 관계로 설정했다. 친구처럼 지내는 부자도 있겠지만, 태산과 엄흥도 사이에는 말로 다 전하지 못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선왕 이홍위와의 관계 역시 태산의 시점에서 만들어 나갔다. 이홍위가 또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면서도, 상대가 ‘왕’이라는 사실이 주는 무게를 분명히 인식했다. 그러면서 왕이라는 존재를 지나치게 우상화하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굶으면서 마련한 음식을 거리낌 없이 대하는 모습에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시골 소년의 솔직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때론 왕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죠. (박)지훈이는 또래 배우라서 안정감과 편안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이 탄생할 수 있었어요.”

대선배이자 아버지였던 유해진과의 호흡은 김민에게 또 하나의 배움의 시간이었다. 김민은 “선배님이 작품을 대하는 책임감과 한 신의 완성도를 끝까지 끌어올리는 태도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며 “어떻게 하면 신 안에서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장면이 살아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신인 배우인 김민의 입장에서 여러 작품을 거쳐오고, 많은 선배 배우를 만날 때마다 연기에 대한 생각은 매 작품마다 달라지고 있다. 김민은 “가벼운 접근으로는 결코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대사와 감정이 피부 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준비해야만 비로소 장면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선배 배우들과 동료들을 통해 배웠다”며 “준비되지 않은 채 현장에 들어가면 좌절이 남는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됐다. 그래서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은 열정을 쏟아야겠다고 스스로를 다잡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런 김민에게 연기는 ‘짧은 행복의 순간’이다. 그 감정을 느낄 때가 가장 행복했고, 그래서 연기를 사랑한다.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의 설렘 또한 그가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 이유다. 작업물이 세상에 나오고, 관객의 피드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과정이 소중하다.

“‘왕사남’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저한텐 많은 선배와 연기할 수 있어서 연기적으로 큰 변곡점이 됐어요. 앞으로 더 많은 시도를 해보면서 ‘본질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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