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엄마의 밥을 먹을수록 엄마의 수명이 줄어든다. 영화 ‘넘버원’은 일상적인 식탁 위에 죽음의 숫자를 올려놓으며 가족애를 낯설게 비튼다. 판타지적 설정을 빌려왔지만 결국 그 끝은 가족 간의 엇갈린 사랑과 소통에 있다.
‘넘버원’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아들 하민(최우식 분)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 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하며, 오는 11일 개봉한다.
‘넘버원’은 엄마의 음식과 수명이 직결된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밥을 먹는다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가 이별을 앞당긴다는 공포로 변하며 하민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다소 자극적인 설정이지만 영화는 ‘숫자가 왜 보이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은실·하민 모자의 관계에 집중하며 그 안에서 엇갈리는 모자의 사랑과 소통 과정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엄마 은실의 유일한 사랑 표현은 밥상이다. 남편과 첫째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 은실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하민뿐이다. 그런 은실이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정성스레 차린 밥상뿐이다. 말 대신 반찬을 얹고, 위로 대신 국을 끓인다. 한국 사회에서 밥상이 지닌 특별한 의미를 짚어봤을 때 은실의 행동은 그가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다.
문제는 하민에게 밥상이 더 이상 따뜻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은 오히려 엄마의 사랑을 피하게 만든다. 엄마의 밥을 먹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해버리고 가시 돋힌 말을 퍼붓는다. 이들 모자의 사랑은 같지만 표현 방식이 달라 어긋난다.

엇갈린 가족 간의 소통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말하지 못한 진심과 잘못 전달된 사랑으로 삐걱거리는 스크린 밖 우리의 관계와도 닮아 있다. 그래서 ‘넘버원’의 가장 큰 힘은 ‘공감’에 있다.
이 과정에서 하민은 점점 소통에 서툰 인물이 된다. 엄마에게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은 그를 고립시킨다. 결국 하민은 모든 관계에서 회피를 선택한다. 여자친구 려은(공승연 분)과도 마찬가지다. 작품 속에서 하민의 회피는 이기심이지만 동시에 사랑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다.

그러면서도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결국 모든 감정은 ‘사랑’으로 귀결된다. ‘넘버원’은 우리가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가족애’에 대한 질문을 꺼내 든다. 이처럼 ‘넘버원’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시 사랑과 치유를 배워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장혜진은 과장 없는 생활밀착형 연기로 자연스럽게 관객 각자의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아들 하민 역의 최우식 역시 사랑은 깊지만 표현에는 서툰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다만 극 중 배경이 부산인 만큼 최우식의 다소 어색한 사투리 연기는 옥에 티다.

‘넘버원’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표현 방식은 다를지언정 각자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가족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이 장르에서 늘 따라붙는 위험 요소는 신파다. 작품 속에선 관객이 감정을 충분히 쌓기 전에 눈물을 먼저 요구해 아쉬움이 남는다.
다소 신파의 경계에서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넘버원’은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로 가족의 의미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제 몫을 해낸다. 과연 올 설 연휴 극장가에서 어떤 공감을 만들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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