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한국 배우들의 활동 반경이 달라졌다. 더 이상 해외 영화제 수상은 ‘의외의 성과’가 아니다. 일본과 미국, 서로 다른 영화 시스템 한가운데서 한국 배우들이 각자의 이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 영화계의 가장 신뢰받는 지표로 꼽히는 시상식 키네마 준보에서 영화 ‘여행과 나날’이 일본영화 베스트 10 1위에 올랐다. 또한 극 중 각본가 ‘이’를 통해 국적과 언어의 경계를 지운 연기를 선보인 심은경은 제99회 키네마 준보 베스트 10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는 한국 배우 최초의 기록이다.

앞서 심은경은 영화 ‘신문기자’를 통해 일본 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한국 배우 최초 일본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에서도 잇따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 ‘여행과 나날’ 수상까지 이뤄내며 심은경은 일본 영화계에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배우 손석구의 제작사 스태넘과 배우 최희서가 함께한 영화 ‘베드포드 파크’는 제42회 선댄스영화제 미국 드라마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장편 데뷔상)을 수상하며 북미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선댄스는 신진 감독과 배우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포착하는 무대다. 그곳에서 한국 배우가 주연이자 제작 주체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베드포드 파크’는 영화제 공개 직후 연이은 기립박수와 함께 화제를 모았고, 출품작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성사시키는 글로벌 배급 계약까지 이어졌다. 이는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가 북미 시장에서도 설득력을 가졌다는 방증이다.

특히 손석구는 이 작품을 통해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새로운 위치에 섰다. 출연에 그치지 않고 제작의 위험을 함께 감수하며 결과로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희서의 행보 역시 눈에 띈다. 그는 이미 ‘박열’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지만, ‘베드포드 파크’에서는 한층 확장된 얼굴을 보여줬다. 이는 언어와 배경을 넘어 감정으로 승부하는 배우로서의 경쟁력을 확인시킨 순간이다.

물론 이들의 성공 방식은 각기 다르다. 심은경은 일본 영화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현지 시스템의 중심에서 성취를 쌓았고, 최희서와 손석구는 미국 독립영화 시장에서 새로운 협업 구조를 만들어냈다. 국내 성과에 안주하지 않은 덕분이다.

이들의 수상은 한국 영화계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이 위기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배우들의 커리어는 오히려 더 멀리 확장되고 있다. 거대한 자본이 아닌 개인의 선택과 지속적인 연기 축적이 국경을 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증명하고 있다.

이제 해외 수상은 ‘운 좋은 결과’가 아니다. 심은경, 최희서, 손석구가 보여주듯 충분히 준비된 배우들이 도달한 결과다. 이 결과는 한국 배우들이 더 넓은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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