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소영 기자] 누군가에게 기회는, 누군가에는 위기가 될 수 있다. 더욱이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더욱 도드라진다.

최근 국내 투수진 입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2026시즌부터 시행되는 아시아쿼터제 도입으로 주전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쿼터는 기존 외국인 선수 3명과 별개로 아시아야구연맹 소속 국가와 호주 국적 선수 중 1명을 영입할 수 있는 제도다.

일찌감치 투수 영입 러시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올시즌 KBO리그는 역대급 ‘투고타저’ 흐름을 보였으나, 마운드 경쟁력에서는 물음표가 남았다. 내년에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대비한 평가전에서도 명암이 뚜렷했다. 여기에 한화를 19년 만에 한국시리즈로 이끈 주역 ‘33승 듀오’ 코디 폰세-라이언 와이스가 맹활약을 펼치며 판도를 뒤흔들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하는 만큼 선발진의 호투가 경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족한 타격과 달리 올해 팀 평균자책점 1, 2위를 달린 한화와 SSG가 대표적인 예다. 반대로 팀 홈런 1위와 타율 2위를 기록한 삼성은 시즌 내내 마운드에 발목이 잡혀 최종 4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통합 챔피언 LG 역시 시즌 막판 투수가 삐끗하면서 자력 우승의 기회를 놓쳤다.

각 구단이 앞다퉈 아시아쿼터 ‘투수 영입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판이 깔린 셈이다. 실제 10개 구단 가운데 내야수를 영입한 KIA를 제외한 모두 투수에 배팅했다. 이중 일본프로야구(NPB) 출신 일본인 투수만 무려 7명에 달한다. 호주 국적의 LG 라클란 웰스는 NPB 경험은 없지만, 올시즌 키움에 대체 선수로 입단해 리그 적응을 마쳤고, 대만 국가대표 출신인 한화 왕옌청은 NPB 2군에서 활약했다.

비교적 합리적인 몸값도 한몫했다. 아시아쿼터 선수의 경우 계약금, 연봉, 옵션 등을 포함해 최대 20만 달러(약 2억8990만원)에 영입할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즉시 전력 수혈이 가능한데다, 기존 외국인 선수 3명에 더해 아시아쿼터 선수까지 총 4명의 선수를 한 경기에 출전시킬 수 있는 만큼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자리를 잡지 못한 국내 투수진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양현종(KIA) 회장은 “선수들의 일자리 문제 차원에서 부정적으로 본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선수 권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뜩이나 다양한 사회적 흐름으로 선수풀이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한발 앞서 아시아쿼터제를 도입한 농구와 배구는 이미 효과를 누리고 있다. 여자농구에서는 일본 출신의 이이지마 사키(부천 하나은행)가 올스타 1위에 뽑히는 등 흥행에 적지 않은 파급력을 남겼다는 평가다.

프로는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자리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다. 사상 첫 ‘외국인 4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토종 선발진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ssho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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