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데프콘의 이름이 붙은 프로그램은 요즘 쉽게 성격을 규정하기 어렵다.
웃음을 전면에 내세운 예능일 때도 있고, 과학과 교양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얼굴로 등장하기도 한다. 장르의 경계는 흐릿하지만, 그 중심에는 늘 데프콘이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EBS1 ‘취미는 과학’이다. 지난해 10월 첫 방송 이후 30회를 훌쩍 넘긴 이 프로그램은 방송을 넘어 유튜브에서도 꾸준한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일상 속 ‘밥친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핵 폭발, 시간 여행, 노화, 대지진, 태양 폭발 가능성, 화산 폭발, 양자역학, 기후 위기와 대멸종, AI 특이점까지 주제는 넓고 묵직하다. 자칫 어려워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데프콘은 대신 질문을 던지며 이해를 돕는 연결 고리가 된다.
성균관대 이대한 교수, 광운대 장홍제 교수, 과학 커뮤니케이터 항성(강성주)과의 호흡 속에서 그는 과학을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과학을 이해하게 만든다. 딱딱한 교양의 틀을 부드럽게 풀어내는 힘은 ‘지식 전달자’가 아닌 ‘호기심의 동반자’라는 태도에서 나온다.
이 감각은 예능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ENA·SBS Plus ‘나는 솔로’에서 데프콘은 연애 리얼리티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다. 출연자들의 선택과 감정을 과도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시청자가 궁금해할 지점을 솔직하게 짚어낸다.
그의 분석은 웃음으로 소비되지만 동시에 프로그램의 서사를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연애 예능과 비교되며 ‘나는 솔로’만의 색이 굳어진 데에는 데프콘의 리액션과 코멘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활동 반경은 지상파와 케이블, OTT로 빠르게 확장됐다. KBS2 ‘동물은 훌륭하다’를 통해 안정적인 진행력을 보여줬다. 김태호 PD가 연출한 MBC ‘굿데이’에서는 지드래곤을 중심으로 한 출연진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중심축 역할을 맡았다.
형식이 느슨한 프로그램일수록 진행자의 균형 감각이 중요해지는데, 데프콘은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장면을 정리하는 역할을 해낸다. 출연진에게 ‘나는 솔로식’ 별명을 붙이는 순간처럼, 자신만의 무기를 활용하는 타이밍도 정확하다.
넷플릭스 예능 ‘동미새: 동호회에 미친 새내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데프콘은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체험에 나서며 동호회 문화와 일상을 전달한다. OTT 환경에서도 그의 진행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웃음을 만들되 과장하지 않고, 정보를 전하되 설교하지 않는다.
가수 데프콘에서 방송인 데프콘으로의 이동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MBC ‘무한도전’을 계기로 예능감을 인정받았다. 그룹 ‘형돈이와 대준이’, MBC ‘나 혼자 산다’를 거치며 공감형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점차 ‘방송인’으로 재정의해왔다.
방송가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데프콘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필요한 말을 정확한 위치에 놓는다. 메인 MC로 세워도 흐름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뢰, 출연진 사이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쌓였기 때문이다. 데프콘은 여전히 확장 중이다. 다음 무대가 어디든, 그의 이름이 붙은 프로그램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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